원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1182004155&code=990402

부산 기장군 해수담수화 수돗물 공급 갈등 문제가 새해에도 이어지고 있다. 일반 가정에 공급되는 수돗물의 원수인 바닷물에 고리 핵발전소에서 배출되는 ‘방사능’ 물질인 삼중수소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삼중수소는 물에 섞인 오염물질이 아니라 일반 수소를 대신해 물분자 자체를 변형시키기 때문에 해수담수화 시설을 포함한 어떤 정수처리 공정으로도 제거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러한 ‘물 안전성’의 문제가 기장군만의 문제인 걸까?

그 답을 찾기 위해 “먹는 물에 대한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가?” “그런 시설이 왜, 거기에 자리 잡았는가”를 보자. 상하수도 시설을 포함해 물과 관련된 책임은 정부에 있다. 물은 공공재이기 때문에 정부가 독점 관리해 왔다. 그 결과 우리는 물을 경제성과 품질을 고려해 선택할 수 없다. 그냥 정부가 공급해 주는 대로 쓸 수밖에 없다. 그런 물을 민영화하려는 계획이 물밑에서진행되고 있다. 2010년 녹색성장위원회·환경부·국토해양부는 함께 ‘물산업 육성 전략’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 보고서에 기장군 해수담수화 시설의 주역인 ㄷ기업의 이름이 해수담수화와 함께 언급돼 있다. 또한 총 1954억원의 사업비 중에 국비, 시비와 함께 706억원의 민자를 유치해 해수담수화 시설을 설치하고 수돗물을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실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미 수십개의 지자체가 민간위탁이라는 이름으로 민영화 단계를 밟고 있고, 중앙정부는 지자체에 이를 강요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해수담수 공급의 강행은 물 민영화 실현 계획의 일부로 봐야 한다.

상수도와 같이 선택의 여지가 없는 ‘독점적’인 사업이 ‘민영화’가 되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첫째, 물값이 오를 수밖에 없다. 둘째, 운영 노하우나 기술이 사기업의 영역으로 이전되고 자체적으로 발전되어 공공의 영역으로 되돌릴 수 없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기장군의 사례에서 보듯이 먹는 물의 안전성과 안정성을 장담할 수 없다는 데 있다. 1991년 두산전자의 낙동강 페놀 방류 사건은 ‘불운한 사고’가 아니라 기업의 비용 절감을 위해 먹는 물 안전성을 외면하고 고의적으로 페놀을 방류한 범죄였다.

물 민영화라는 간판을 내걸고 진행되는 사업은 없다. 하지만 실질적인 물 민영화가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 기장군의 해수담수화 상수 공급 논란은 그 과정에서 핵발전소 문제와 결합해 큰 저항에 부딪혔지만, 결코 기장군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안전하지 않은 물을 집 수도꼭지를 통해 반강제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구조에 살고 있으며, 기장군민들은 그 구조와 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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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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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www.redian.org/archive/94921

도시와 문명, 그리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이지만 사람들의 눈에는 드러나지 않는 노동에 대해 이현정씨의 연재 글을 3차례 정도 게재할 예정이다. 이번 글은 두번째 글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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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사회의 그늘, 산재 사망률 1위 진폐증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나 각자의 직업은 결국 우리가 삶을 영위해 나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생산하고 소비하고 뒤처리를 하는 과정의 어느 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이전 글인 ‘인간생태계에도 분해자가 있다’에서는 그 중 청소 노동자나 정화조 노동자 등 ‘분해자’의 역할을 하는 노동은 특히 문명사회가 유지되기 위해 필수적임에도 불편해서 숨기거나 점잔빼며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희생에 대해서도 잘 알려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가 앞에서 전제한 ‘분해자’의 역할을 하는 노동에만 해당될까?

물론 그렇지 않다. 대표적인 예로 대한민국에서 공식적인 산업재해 사망율이 가장 높은 분야는 1차 산업인 광업이다.(1)2014년 말 기준 광업의 사망만인율(노동자 만 명 중 산재 사망자 수)은 전체 평균 1.08명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높은 342.3명이다.(관련 통계 링크)

광업 노동자수 자체가 많지 않기 때문에 사망자 수로 따지면 제조업이나 건설업에 비해 높지 않은 것처럼 비춰지지만 사망비율로 따지면 다른 업종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높으며, 그 중 대부분은 질병재해, 즉 진폐증의 비율이 압도적이다. 광업 중에서도 사망만인율이 가장 높은 세부 업종은 석탄광업으로 1,077명/만명에 달하며, 금속 및 비금속 광업이 492명/만명으로 그 뒤를 따르고 있다.(2)


진폐증, 미세먼지, 기후변화의 관계는?

진폐증이 단순히 광업에 종사하고 있는 일부 노동자들의 이야기 같겠지만, 이 문제는 사실 요즘 계절과 관계없이 우리를 괴롭히는 황사(혹은 미세먼지) 문제나 전 지구적인 문제인 기후변화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대부분의 환경문제는 어떤 물질이 첫째 ‘적절하지 않은 장소’에, 둘째 ‘잘못된 형태’로, 셋째 ‘너무 많거나 적은 양’이 존재하는 (혹은 너무 빠르거나 느린 속도로 늘거나 줄어드는) 문제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진폐증-미세먼지-기후변화는 모두 지하에 수억 년 동안 축적되어 온 화석연료를 불과 몇 백 년 만에 대부분을 꺼내어(3) 이를 ‘소비’하는 다양한 과정을 통해 대기 중으로 확산시키고 있는 일련의 과정에서 발생한 부작용 혹은 후유증으로 해석할 수 있다.

석탄 등 화석 연료의 생산 과정에서 1차적으로 광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에게 밀폐된 공간에서 가장 강한 형태로 영향을 끼친 결과가 진폐증이라면, 미세먼지(4)는 그렇게 생산된 화석연료의 소비과정이면서 동시에 에너지의 생산 과정에서 그 부산물이 주변 지역으로 확산되어 나타난 부작용이며, 그 결과 수억 년 동안 지구의 지하에 축적되어 있던 탄소가 너무 빠르게 기체의 형태로 전환되면서 지구 대기의 조성을 바꿔 나타나는 원치 않는 후유증이 기후변화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연결고리는 지구의 순환시스템 속에서 화석연료뿐 아니라 모든 영역의 생산-소비, 그리고 이후의 폐기과정을 통해 나타나며, 우리의 삶은 그 고리를 벗어나 존재할 수 없다. 노동자에게 해로운 물질은 인간 이외의 수많은 생물들과 생태계 시스템에도 위해를 끼치는 경우가 많으며, 이러한 것들은 하나하나의 개별 사안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전체를 보아야 올바른 파악이 가능하다.


퀴리부인도 산업재해로 사망했다.

퀴리

1934년 7월 5일자 퀴리부인의 사망 기사 -The Burlingtom Free Press, Albany, New York. (출처: http://www.rarenewspapers.com/view/54824)

지난 10월 미래창조과학부 국정감사에서는 “연구는 노동이 아니”라며 임금피크제의 정부출연 연구소 적용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피력한 한 국회의원이 있었다.(5)

그는 국내에서 여성 최초로 한국원자력연구원 연구원장을 지낸 전력을 가진 민병주 의원이다. 연구는 노동이 아니라던 그가 퀴리부인도 산재로 사망했다는 이 소제목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할지 모르겠다.(6)

하지만 우리가 잘 아는 세계 최초의 여성 노벨상 수상자이자 민병주 의원의 학계 대선배로 볼 수 있는 마리 퀴리는 방사능 피폭으로 인한 재생불량성 빈혈, 골수암, 백혈병으로 사망한 것이 명확한 사실이며, 이 질병들은 삼성반도체 노동자들의 대표적인 산재 질병이기도 하다.

물론 차이는 있다. 퀴리부인은 위험성을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음에도 연구를 이어나갔고 그 결정에 따른 책임 역시 감내한 것이지만, 삼성반도체 노동자들의 경우 그러한 위험성에 대한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의 결정에 따른 결과가 아니었다. 그 책임은 당연히 1차적으로는 직접 업무를 설계하고 인력을 투입한 회사에게, 2차적으로는 그러한 산업에 대한 안전망을 만들지 못한 사회에 있으며, 우리는 함께 그 책임을 져야한다.

방사능과 핵발전소의 문제 역시 앞에서 살펴본 전 지구적 시스템의 입장에서 바라봐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핵발전소 내부의 시스템을 안전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핵발전소가 주변 거주지 및 생태계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이 인식은 많이 바뀌기 시작했고, 유출된 방사능이 해양 생태계를 통해 우리나라의 먹거리에, 특히 학교 급식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하려는 노력들로 이어지고 있다. 조금 더 바라자면, 이러한 인식이 광우병 사태와 마찬가지로 단순히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요구를 넘어 지구 시스템에 대한 이해와 ‘안전’ 못지않게 중요한 시스템의 안정성(stability)에 대한 인식 전환으로까지 이어져야 한다.


시스템의 한계와 자기 노동 사이의 괴리

지구의 생태계 자체를 원금이라고 생각했을 때, 이론적으로,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생산되는 이자 부분만이다. 또한, 우리가 버리는 폐기물 역시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처리될 수 있는 만큼만 내놓은 것이 정당하다.

물론 이러한 사고는 지구라는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복잡성과 불확실성을 고려했을 때 어디까지나 이상적이고 이론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그러나 수억 년 동안 축적되어온 화석연료는 거의 고갈시키고, 우리 대에서 책임질 수도 없는 핵폐기물만 남기려는 지금 우리의 모습은 선대에서 물려받은 가산을 다 탕진하고, 자식들에게 어마어마한 빛만 물려주는 탕아와 다름 없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이 글에서는 공교롭게도 에너지와 관련된 산업에 대해 주로 썼지만, 이러한 문제는 다른 모든 산업 분야에서 비슷한 형태로 나타난다. 이를테면 먹거리를 생산하는 축산업, 농업, 수산업에서 조차 농약, 화학비료, 유전자조작식품, 항생제 등을 생산하고 사용하는 과정에서 누군가의 몸에서 농축되거나 자연 환경으로 흘러들어 가 시스템의 안정성을 파괴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문제들이 우리의 삶에 직/간접적으로 지배하고 있음이 분명함에도 우리 각자는 그 과정들을 제어하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우리는 무엇을 생산할지 결정하고, 그 결과가 미치는 영향에 대해 고민하기는커녕 직접 다루는 물질에 대한 정보도 부족한 구조 안에 살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많은 노동자들이 누구보다 먼저 일차적인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이러한 왜곡은 어디서 기인하는 걸까?


3편: 무엇이 은폐를 구조화 하는가 -거대한 전환이 필요하다.


<참고>

1. 고용노동부, 2014, 2014.12월말 산업재해 발생현황.

2. 물론 이렇게 압도적인 사망만인율 통계는 1980년대부터 이어진 진폐증 재해자들의 싸움과 그 결과 제정된 「진폐의 예방과 진폐근로자의 보호 등에 관한 법률」 등의 역할이 크다.

3. 우리는 이 과정을 석탄 석유의 ‘생산’이라고 부르지만 실질적으로는 이 역시 긴 세월동안 지구의 다양한 지질학적 과정을 통해 형성된 산물을 소비하는 과정에 가깝다.

4. 그린피스에 따르면 초미세먼지 배출원 중 석탄이 차지하는 비중은 59%(2011년 기준)라고 하며, 한국은 총 전력생산량의 39%(2014년 기준)를 석탄화력발전에 의존하고 있다.

5. 관련기사: [국감현장]과학자 출신 국회의원의 ‘눈물’…”연구는 노동 아냐”-민병주 의원, “노벨상때문에 안타깝고 속상하다” 눈시울 붉혀..”임금피크제 출연연 적용 안돼” (관련 기사 링크)

6. ‘연구는 노동이 아니’라는 발언과 함께 연구를 신성시하며 흘린 눈물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그와 같은 위치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노동’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얼마나 왜곡되어 있고 저급한 것인지 많은 이들이 확인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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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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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www.redian.org/archive/94627


도시와 문명, 그리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이지만 사람들의 눈에는 드러나지 않는 노동에 대해 이현정씨의 연재 글을 3차례 정도 게재할 예정이다. 많은 관심을 부탁한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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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들이 버섯을 먹어도 되나요?

이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익숙해진 단어인 생태계(ecosystem)에 대해 배울 때 가장 처음 배우는 내용이 생산자-소비자-분해자의 관계다.

지구의 흙, 물, 공기 등의 무기물을 생명활동에 필요한 유기물로 바꾸는-우리가 광합성이라고 부르는-과정을 담당하는 생산자와 이 유기물을 소비하는 소비자만 있다면 무기물은 금방 고갈되고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내에 사라질 것이다. 이 과정을 순환 고리로 연결시키는 것은, 바로 유기물을 다시 무기물로 분해하는 분해자이다.

채식주의자 친구들과 버섯매운탕을 먹으러 가서 “어, 버섯은 식물 아닌데~”라는 재미없는 농담을 하고 비난을 받곤 했는데, 온라인상에 “채식주의자들이 버섯을 먹어도 되나요?”라는 글이 올라 와 있는 것을 보면 그런 생각을 한 게 나만은 아니었나 보다.(1)

버섯은 식물이 아닌 대표적인 분해자이며 균계로 분류된다. 버섯, 세균 등의 분해자들은 생산자와 소비자인 식물과 동물이 죽어서 남긴 잔해를 분해하고 자연으로 돌려줌으로서 새로운 생명이 자라날 수 있는 바탕을 만들어 주고, 그래서 ‘자연의 청소부’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 음지에서 일어나는 이런 분해자의 역할을 전혀 알아채지 못하거나, 쉽게 잊어버리고 만다.

사실 인간생태계에서도 분해자 역할을 하는 노동은 여러 가지 의미로 ‘음지’에서 수행되고 있다.

누군가는 매일 저기 들어가요.

얼마 전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부제를 가진 대학 교양수업에서 도시하천 답사 특강 안내를 했다. 말이 도시하천 답사 수업이지, 있었던 지도 모르는 캠퍼스 구석의 외진 댐 앞에서 집합을 하고, 철망의 개구멍을 지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복개된 하천을 통과하고, 학교를 한참 벗어나서야 끝나는 수업인지라 수강생들의 얼굴에서 불만의 기색이 역력했다.

몇 년 째 같은 코스로 답사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학생들의 얼굴이 가장 찌푸려지는 지점은 항상 같은 지점, 같은 순간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그 곳, 복개되어 하수도로 쓰이고 있는 작은 물길이 본류와 만나는 지점의 철문을 들어 올리는 순간, 학생들의 얼굴은 일제히 일그러졌다.

현정1

한 학생이 도르레를 돌려 우수토실의 문을 열고 있다.

그 곳은 도시가 생기기 전에는 작은 물길이 본류와 만나는 지점이었지만, 지금은 우수토실(雨水吐室, overflow chamber)이라는 구조물이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지천을 복개해 하수도로 사용하면서 하수와 계곡수가 함께 섞여 흐르는데, 비가 오지 않을 때에는 이 물을 하수처리장으로 연결된 관으로 보내고, 비가 오면 빗물과 하수가 섞인 물이 하천 본류로 넘쳐 흐르도록 구조물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여기에 몇 년 전 생태하천 복원 사업을 하면서 무거운 철문을 만들어 덮어 놓았는데, 도르레를 돌려 그 철문을 열자, 학생들은 일제히 얼굴을 찌푸리며 한 발짝씩 뒤로 물러섰다. 하수 냄새가 진동을 했기 때문이다.

학생들을 안심시키려, 그 하수는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본인들이 곧 점심을 먹을 캠퍼스 내 식당에서 설거지한 물, 화장실의 세면대 물 등이 모여서 흘러오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점심시간이나 저녁 식사시간에는 유량이 늘어난다는 설명을 했다.

빨리 문을 닫았으면 하는 바람의 눈초리가 느껴졌지만, 계속 이어서, 문을 열자 드러난 빗자루가 왜 거기에 있는지를 설명했다. 여러분들이 잠시도 맡고 싶어하지 않는 이 냄새가 누군가에겐 너무나 익숙한 냄새인데, 왜냐하면 그 누군가가 비가 오기 전 항상 이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면, 하수가 들어가는 유입구를 저 빗자루로 치워주지 않는다면, 역류가 일어나 여러분이 공부하는 캠퍼스가 하수에 잠길수도 있는 시스템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현정2

현정3

하수가 들어가는 유입구 역시 누군가 직접 치워줘야한다

그냥 조금 더러운 일이 아닌 생존의 문제

누군가에게그런 ‘더러운’ 장소가 일터가 되는 것은 지금의 구조에서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다. 그렇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그러한 일이 그냥 조금 더러운 일을 수행하는 데에서 끝나지 않고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생명에 위협을 가하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있는데, 이러한 사실이 잘 알려지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오래 전, 지금은 캐나다로 이민을 가버린 남자 간호사 친구가 심각한 표정으로 얘기를 꺼냈다. “음식물 쓰레기 봉투 안에 다른 봉투를 넣으면 절대 안되겠더라.”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얘기였지만, 그다지 심각하게 듣지 않고 있다가 이어진 친구의 얘기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는 대형병원 응급실 간호사였다. 어느 밤, 엠뷸런스에 실려온 환자의 온 몸에서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의 악취가 났고 입,코,귀는 모두 음식물 쓰레기가 차 있었다. 급하게 옮겨 기도를 확보하고 처치를 했지만, 결국은 뇌사상태에 빠졌다고 한다.

그 환자는 음식물쓰레기 재활용업체의 노동자였다. 여느 날과 같이 음식물 쓰레기를 혼합하는 기계에 수거해 온 쓰레기를 넣었는데 기계의 작동이 멈췄다 한다. 이유는 봉투 안에 또 다른 봉투가 있었고, 그 봉투가 음식물 쓰레기를 잘 섞기 위해 돌아가야 하는 교반날개의 회전축에 끼어서였다. 기계가 다시 돌아가게 만드는 가장 빠른 방법은 직접 그 음식물쓰레기 안으로 헤엄쳐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들어간 직후 음식물 쓰레기가 뿜어내는 가스에 정신을 잃고 그 안으로 빠져버렸다. 그는 결국 음식물 쓰레기에 익사한 것이다.

많은 산재들이 그러하듯, 이러한 비극적인 사고를 개인의 부주의로 돌리고 은폐하는 방식으로 처리되는 일은 흔하디 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1년부터 2011년까지 10년 동안 공식적으로 정화조와 하수도 맨홀에서 작업 도중 질식사로 ‘사망’에 이른 노동자만 83명에 이른다(추락사 제외)(2).

문명은 공짜가 아니다.

거의 20년 전, ‘환경공학과’에 입학했을 때, 나는 내 예상과는 다른 커리큘럼에 무척이나 실망했다. 나는 좀 더 그럴듯하고 거대한 무언가, 자연 환경을 지킬 수 있는 멋들어진 방안을 배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환경공학과의 커리큘럼은 도시의 ‘배설물’들을 어떻게 처리/처분 할 것인가와 관련된 과목들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처리방안들은 완벽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 후, 전공 수업에 들어가 하수처리장, 폐수처리장, 위생매립지, 소각장 등등을 견학하면서 그 규모와 모습을 보며 그 심증은 더욱 굳어져 갔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한 교수님이 냄새가 난다고 얼굴을 찌푸리던 동기생을 혼내시며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고, 절대 그런 태도를 취하면 안 된다고 얘기하시던 순간이다. 나는 그 교수님이 왜 그렇게 얘기하셨는지 이해하고, 심지어 그 분의 직업정신을 존경하기도 하지만, 그 결론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는 오히려 더 드러내야 한다. 잠시 노출되는 것만으로 얼굴 찌푸리는 그런 곳이 누군가의 일터이고, 아무 일 없는 듯 화려한 이 도시들의 구석에서, 지하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 시간에 위태위태하게 이어지고 있는 그런 노동 덕분에 이 도시가 그나마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아야 한다. 또한 어찌되었든 잘 돌아가고 있는 듯 보이는 문명사회의 이면에는 얼마나 많은 문제가 도사리고 있는지, 그로인해 얼마나 많은 취약 계층의 사람들과 인간 이외의 생태계 구성원들이 생존 자체를 위협받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올바른 대안과 진정한 전환은 정확한 현실인식을 바탕으로만 시작될 수 있을 테니.

* 2편에 계속: 생산과 소비의 왜곡: 노동자에게 해로운 물질은 생태계에도 해롭다.

<참조>

(1) “Can Vegetarians Eat Mushrooms?”에서는 균류인 버섯이 생물의 분류법으로 봐서는 식물계보다는 동물계에 가까운 특성을 가지고 있고, 음식으로서 채식주의자들에게 더 적합한 이유는 찾을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북미 채식협회 등에서는 채식주의자들을 육고기, 조류, 조개, 생선 및 그 부산물을 먹지 않는 사람으로 정의함으로서 버섯이 채식에 적합하지 않는 식재료로 분류하고 있지 않다고 결론 내리고 있다.(관련 글 링크)

(2) 관련기사: 한겨레, 지하에서 ‘살인’ 똥냄새에 쓰러지는 사람들(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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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성과, 그리고 드러난 문제들

앞에서 살펴본 진보 정당 내부에서의 녹색활동과 관련 된 역사에서는 일정한 성과와 함께 많은 문제들이 보인다.

3.1. 성과들

민주노동당, 청년진보당에서 정의당에 이르기까지 진보정치 영역에서 ‘녹색’은 끊임없이 호출되어 왔다. 처음 당의 강령에 선언적으로 포함되어졌던, ‘환경’과 ‘녹색’은 당 내부의 논의과정과 선거를 거치며 구체적인 실체를 가지게 되었다.

청년진보당의 청년환경센터, 민주노동당 환경위원회를 시작으로, 2007년 대선 시 민주노동당 녹색정치 사업단은 당내 대통령 후보들의 녹색점수를 평가하기도 했다. 2008년 진보신당 창당 시에는 녹색의 가치가 진보정당의 전면에 서게 되었으며, 이러한 흐름은 당내 녹색정치위원회뿐만 아니라 에너지정치센터, 태양광발전소 및 초록배움터 건립으로 이어졌다.

진보신당에서는 지역의 녹색위원회도 구성되면서, 보다 자주 일상적인 차원의 모임은 물론, 북한산 케이블카 반대운동과 같은 지역의 개발 이슈에 일상적으로 연대했다. 또한 이 과정에서 당 내의 장애인위원회와 연대하여, 케이블카 건설의 빌미로 언급되는 장애인 이동권과 관련하여 “모든 욕구가 권리일 수는 없다”며 쟁점을 바로 세우려는 노력을 기울였으며, 그간 당 내부에서 꾸려온 무지개 연대를 위한 노력이 빛을 발하기도 했다.

이러한 성과들과 함께 녹색정치의 주체적 역량이 커지고, 필요성이 확산되어 온 것은 사실이다. 녹색정치의 사회적 요구가 커지며, 2012년 녹색당의 창당 이후, 기존 진보정당들 사이에서도 향후의 방향성으로서 ‘녹색’은 끊임없이 호출되어 왔다.

3.2. 논쟁의 회피와 당 차원의 가치정립 실패

진보정당 안에서 녹색정치의 성장과 발전 과정이 있었지만, 일정 시기 이후, 기존의 진보정치 그룹 내에서의 환경/생태에 대한 인식과 실천은 앞으로 나아가기는커녕 퇴보한 느낌마저 든다. 20년 전의 좌파들의 환경 인식에 대한 비판이 여전히 유효하고, 선언적인 ‘녹색의 호출’과 추상적인 수준의 논쟁이 반복되는 것은, ‘녹색’의 문제를 진보정치의 영역으로 ‘화학적으로’ 소화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논쟁, 혹은 토론을 회피하면서 올바른 ‘공통의’ 가치를 정립하는 데 실패한 탓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예로 2005년 황우석 사태에 민주노동당 내에서 생명윤리에 관심이 많은 당원들은 논의와 발언을 여론의 뭇매를 이유로 자제시킨 사례가 있다. ‘파시즘’과 ‘위안부’ 비유 논쟁의 당사자로서 책임을 지고 당직을 사임한 노현기 전 민주노동당 부평구위원회 부위원장은 황우석 사태의 진실이 밝혀지고 난 후 또다른 기고를 통해 “침묵, 때로는 죄악이었다”(29)며, “과연 정치권과 언론이 정말로 황우석 연구에 제기되는 의혹을 모르고 있었나? 아니 그 이전 황우석 연구 과정에서 난자제공 과정의 윤리문제를 그렇게 쉽게,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희생시켜도 되는 것이었나?”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리고 “말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징표이다. 말(言)은 생물들 간에 종(種)을 구분 짓는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이다. 그리고 현실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저항이다.”라면서도 “그러나 이제 두렵다”며 매일노동뉴스에 연재하던 <여성과 노동> 칼럼 연재를 중단했다.

3.3. 녹색 ‘정치’ 대신 녹색 ‘부문’만 남아

진보신당 초기 녹색의 가치를 전면에 내걸고 다양한 활동들을 시작했음에도, 부문위원회라는 형태의 한계와 중앙당의 부문위원회에 대한 철학 부재로 많은 부침을 겪고 논란이 되었다. 앞에서 언급한 녹색특위 간사직 폐지 시 중앙당의 “부문/과제별 위원회 건설 원칙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라는 것과 녹색정치위를 인준할 경우 다른 부문위도 도미노처럼 인준할 수밖에 없다는, 그리하여 당 조직과 예산이 방만해질 수 있다”는 발언은 말 그대로 녹색정치의 영역을 다양한 가치를 병렬식으로 늘어 놓은 것 중 하나로만 사고함으로써, 이미 활기를 띠기 시작한 녹색 정치의 싹을 잘라버린 것과 다름없다. 또한, 녹색뿐만 아니라 다양한 부문에 대해 당원들 ‘개인’의 요구와 관심사를 알아서 해소할수 있는 장으로 여길 뿐, 당의 정책과 정치적 방향성을 만들어 가는 과정으로는 사고하지 않음으로서 ‘예산낭비와 방만함의 애물단지’로 인식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진보신당에서의 토론의 부재와 ‘하고 싶은 사람이 해라’는 ‘부문’에 대한 무책임한 인식은 과거 민주노동당의 “‘적녹정치’에 대한 푸대접”과 “선거 때 잠시 구호로 쓰이는”(30)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던 것으로 보이며, 부문운동 자체의 위상 하락과 함께 녹색의 가치 역시 실질적으로 당 ‘정치’의 영역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2010년 지방선거를 전후로, 당의 이름을 걸고 새롭게 만들어 나가는 녹색 활동들보다는 4대강 반대투쟁 등 외부 연대투쟁에 참여하는 형태의 활동들이 주를 이뤘다. 2010년 중앙당의 “당원이 실천하면 4대강을 살릴 수 있습니다! 당원 실천 사항 (제안)”(31)에 대해 한 당원은 “청소년이 주축인 4대강 카페 행동방침”인 줄 알았다며, 당이기 때문에 “청소년성, 아마튜어성 행동방침 나열”만으로 98% 부족하다고 지적하며, “이러니 싸움 성과를 날로 민주당에 갖다 바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3.4. 선언적 ‘녹색’의 남발

진보정당 내에서의 녹색정치의 여정 속에서 치열한 논쟁의 회피와 부문운동으로의 전락이라는 현실과는 달리, ‘녹색’의 호출은 더욱 잦아졌지만 모두 선언적인 수준에 그쳤다. 본인 역시 녹사연의 설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김현우 전 녹색위원장은 이 과정에 대해 “결정적으로 진보신당에서 가장 큰 세력이었던 녹사연은 녹색사회주의 노선을 단지 참칭만 하다가 2013년 재창당을 거치며 사실상 폐기했다”고 평가하며, “다만, 녹색사회주의를 선택할 때에도 버릴 때에도, 붉은 장미를 선택할 때에도 버릴 때에도 어떤 심각한 논쟁이 없었다는 것 역시 적어둔다.”고 정리하고 있다.(32)

물론 이러한 과정은 진보정치 전반의 쇠락과 떨어트려 생각할 수 없다. 녹색을 호출한 녹사연 등의 집단이 진보정치 쇠락을 타개하는 방향성으로 ‘녹색’의 가치에 주목했다는 점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러한 호출을 단지 선언적인 차원에서의 녹색의 남용, 남발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은, 녹색 ‘정치’의 영역은 녹색을 선언하는 주체의 진정성의 문제가 아니라 당 차원의 실질적인 이념으로 만드는 과정과 당의 정책으로 가공해 내는 실천의 문제일 것이기 때문이다.(33) 물론 이러한 구체화, 전면화 과정의 실패 역시 진보정치의 전반적인 쇠퇴라는 맥락과 분리해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녹색정치 성찰과 전망

4. 녹색정치의 전면화를 향한 전망

진보정당 내에서의 녹색 운동들이 녹색 ‘정치’의 단계로 발전하지 못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진보정당들 안에서 녹색은 부문의 문제로 축소되거나 중심의 가치로 삼아야한다고 선언되기만 했을 뿐, 당 차원에서 전면적이고 적극적으로 채택되어 각 사회영역의 문제들에 대한 판단 근거로 작동하거나, 구체화된 정책을 제안하거나, 궁극적으로 새로운 사회상을 제시하는 단계까지 발전하지 못했다. 이는 과거의 환경-생태 운동이 가진 실질적 한계 및 오해와 함께, 여러 차례 선언되었던 진보적인 녹색정치에 대한 논의가 추상적 수준에서 머물렀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제안할 수 있는 전망 역시 그다지 높은 구체성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 그렇지만, 그 간의 생태주의가 진보정치 안에서 오해되거나 명확히 배제하지 못했던 부분들에 대해 정리하고, 녹색의 문제를 세대간/세대내 평등의 문제로 바라보는 틀을 다시 한 번 제안함으로서, 녹색의 가치를 사회 전반에 걸친 가치 체계로 수용하고, 새로운 진보정당의 전면에 내 걸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려고 한다.

■ 회귀주의가 아닌 생태적인 미래시대로의 전환 -반회귀주의/반봉건주의

새로운 녹색정치는 과거로의 회귀가 아닌 새로운 상태의 미래상을 제시해야 한다. 산업화 이전의 시대에 대한 낭만주의나 향수를 바탕으로 한 생태주의는 과거의 시대가 기대고 있는 봉건사회의 문제를 간과하고 여성주의나 LGBT운동, 다양한 형태의 가족, 반권위주의 운동 등과 충돌할 수 있기 때문에 명백한 ‘진보’의 가치로 인정하기에 주저함이 있어왔다.

전근대적인 사회가 모두 지속가능하고 생태적인 사회였던 것은 아니었음은 잘 알려져 있다. 관건은 그 시대의 인구, 소비수준, 기술 등이 그 지역 혹은 전지구적 차원에서 생태계라는 시스템의 한계를 넘어서는가 아닌가이다. 과거의 많은 사회는 적은 인구, 낮은 소비 수준과 기술로 인해 그 한계 안에서 유지되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봉건주의적인 시대상 자체가 아니라 시스템의 한계 안에서 조화롭게 사는 지혜일 뿐이다. 그런 면에서 기술에 있어서도 무조건적인 배척이 아닌 사회의 모습에 맞는 ‘적정기술’에 대한 고민과 함께 새로운 미래상을 구체적으로 그려야 한다.

■ 시스템의 한계 인식을 통한 능동적인 전환 -세대간 분배정의

환경의 문제가 지속가능성, 혹은 지탱가능성(34)의 문제로 인식되며 미래세대를 고려한 세대 간 평등의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한 건 최근의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이 막연하고 추상적인 수준에서 끝나거나 허울 좋은 수사로만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제는 보다 구체적으로 시스템의 한계를 인식하고 그 한계 내에서 공존하는 방법을 능동적으로 찾아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핵폐기물 문제는 현재 사회에서 발생한 수용한계의 초과용량을 미래로 떠넘기는 문제로, 난개발 문제는 현재의 사용한계의 초과 용량을 미래로부터 빼앗아 오는 문제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국립공원 케이블카 문제도 장애인 보행권의 문제와 충돌하는 것처럼 포장되는 경우가 많다. 이 사안을 세대 간 평등의 관점에서 보면 현재의 장애인, 노약자들이 산을 즐길 수 있는 수단이 되더라도, 그 수단으로 말미암아 미래의 장애인, 노약자들-뿐 아니라 사실 그들 이외의 누구도-이 온전한 산을 즐길 수 없는 상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세대 간 분배정의에 위배된다.

이렇듯 시스템의 한계를 적극적으로 파악하려는 노력은 과거와 같이 환경문제를 인간과 자연의 대립으로 바라봄으로서 규제와 윤리의 문제로 환원시키지 않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시스템의 한계를 정량화 하려는 시도들은 생태발자국(Ecological Footprint) 지수 등 형태로 정량화하려는 노력들이 있는데, 이러한 개념을 적극적으로 채용하여 ‘생태적인 적자’를 내 다른 지역, 혹은 미래세대에게 빚을 지지 않는 사회로의 전환을 꾀할 수 있다.

■ 녹색과 경제의 대립이 아닌 ‘다른’ 경제로의 전환 -반자본주의 녹색노동정치

앞에서 제시한 시스템의 한계는 새로운 개념이 아니라 지금까지 ‘성장의 한계’라는 이름으로 제안되어 온 내용이기도 하다.(35) 성장의 한계는 경제가 더 성장하지 않으면 행복해질 수 없을 것 같은 공포감을 바탕으로 정치 영역에서 외면되곤 하지만, 1인당 국민소득이 어느 수준에 근접하면 이후부터는 소득이 얼마나 늘어나든지 삶의 질이 더 이상 높아지지 않는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성장의 한계’를 생태사회주의에서는 ‘생태주의는 자본주의적 양적 성장과 양립할 수 없다’는 것으로 해석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경제의 양적 성장을 곧 발전으로 규정한다. 더 큰 문제는 이 과정에서 기업의 이윤을 위해 경제성 자체가 허구로 꾸며진 경우가 더욱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사실을 국민 모두가 알고 있어도, 콩고물에 대한 기대, 혹은 국익과 대기업의 이익 동일시하는 인식 때문에 동일한 상황이 반복된다. 심지어 타당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된 사업도 때를 기다렸다가 좀비처럼 되살아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 과정에서 자연과 노동자 모두 착취 혹은 수탈당하고 노동은 돈을 벌기위한 수단으로 전락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녹색정치는 반자본주의적인 녹색-노동 정치가 되어야 한다. 가치 있는 무언가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생태계를 파괴하는 노동은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가치를 잃어버리고 평가 절하된 노동이다. 이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당장은 관련 직종의 노동운동과 상충되는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노조의 이익집단화나 우경화를 막고 ‘노동의 가치’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생태적인 사회를 바탕으로 한 다른 경제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발전과 노동 모두 새로운 기준을 통해 생태적으로 재정향(再定向: reorientation)할 필요가 있으며, 실제 철거노동자가 도시환경운동의 주체가 된 사례도 존재한다.(36)

프랑스의 좌파 생태주의자 고르츠(Andr Gorz)는 1978년에 발표한 「에콜로지스트 선언(37)」에서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로부터 우리가 향후 어떠한 체제를 건설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이끌어낼 수는 없으며, ‘생태파시즘’과 ‘생태사회주의’라는 두 가지 가능한 길 가운데 자신이 후자를 선택하는 것은 단순히 성장한계론에 대한 ‘적응’이 아니라 정치적 윤리적 ‘결단’의 소신(이범(1995a) 재인용)”이라고 밝혔다. 물론 녹색 ‘정치’에서 이러한 전환을 ‘개인’의 윤리적 결단의 영역으로 내 몰아서는 안 된다.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경제적인 이익을 미끼로 사람들을 이간질시켜 분열과 싸움을 조장하는 일은 개발 사업을 추진하는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진보적인 녹색정치는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의 녹색-경제의 대립항 구도 자체를 허물고 ‘다른’ 경제로의 전환을 주도해야 한다.

■ 지역 자립과 다원적 가치 체계로의 전환 -세대내 분배정의

앞의 이야기들이 실현 가능성을 확보하면서, 환경정의의 입장에서 또한 설득력을 가지려면 공간적 차원에서의 (전 지구적 차원에서의 국가 대 국가, 국가 내에서의 지역과 지역, 지역 내에서의 지구와 지구) 분배 정의를 고민해야 한다. 이를테면, 앞에서 이야기한 시스템의 한계를 넘어서는 부담을 미래세대로 떠넘기는 문제인 만큼, 다른 국가/지역/지구로 떠넘기는 환경제국주의 현상이 어디에나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한계를 파악하는 기본 시스템 단위로서 특성에 맞는 다층적인 위계를 가진 공간 단위를 설정하고, 그 안의 자립과 자치를 지향할 수 있다. 이러한 시도들은 이미 생태학 등 자연과학의 영역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물 관리의 기본 단위인 유역 단위의 위계를 설정하고, 대유역별 유역 관리청 설치 및 소유역별 (수질오염원) 총량관리 등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에너지 정책, 지역 경제 등에서도 마찬가지의 접근이 필요하다. 핵심적인 산지나 마을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는 단위는 어느 규모가 적정한지, 혹은, 정 반대 방향의 접근으로, 에너지 측면에서 어떠한 방식의 도시 시스템이 바람직한지 고민이 필요하다.

진보정치 영역에서 흔히 ‘지역’은 ‘하방’의 공간이나 중앙정치와 대립되는 개념으로 반정립되어 왔다. 여기서는 ‘지역’을 ‘인간 생태계’의 기본 단위 중 하나로 사고하기를 제안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역의 자립 역시 기반이 되는 자연 시스템과 여기에 적응해 온 지역의 ‘고유성’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여러 지역의 고유성이 모여 ‘다양성’을 이루는 사회로의 전환을 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성공적이려면 개발과 지역의 현안을 정치적인 도약대로만 여기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과 사람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지역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오랜 시간 함께 고민하고 헤쳐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위에서 제안한 네 가지 전환은 그 간에 ‘녹색’의 가치가 받아왔던 오해들로 인해 정치의 영역에서 구체화되지 못했던 활동들이 녹색 ‘정치’가 되기 위한 방향성이다. 이러한 방향성과 맥락을 같이하는 흐름으로 예를 들 수 있는 것이 ‘지역순환경제’ 혹은 ‘지역경제 선순환 구조’의 구축이며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마을기업, 로컬푸드 등의 형태로 실험되고 있다. 과거 공동체의 장점을 가져오되 회귀적이지 않고, 지역 경제 자체를 지속시키기 위해 시스템의 한계를 넘지 않으며, 노동의 가치를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지역의 자립을 꾀한다는 원칙을 잘 지킨다면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은 충분히 있어 보인다.

이제는 다른 다양한 진보적인 가치들과의 충돌, 반대를 위한 반대라는 비난, 옛날로 돌아가자는 회귀주의라는 오해, 개인을 비난하는 윤리주의에 기반한 운동에 대한 반발감을 넘어, 생태적으로 바람직한 사회상과 그 새로운 사회의 산업구조 및 이행 전략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생태계의 한계를 적극적으로 사고하는 ‘좌파’이면서, 동시에 체제의 문제를 도외시하지 않는 ‘생태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5. 녹색 ‘정치’로의 전환을 위하여

녹색정치라는 거대한 주제를 놓고,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의 다사다난한 진보 정당사 내에서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한 글은 결국 졸작이 된 것 같다. 그래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안에서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문제제기가 있어왔고 그에 따른 일정한 성과들이 있었다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 영역으로서의 확장은 아직 충분치 않았다는 평가가 많다는 것이다.

2016년 총선을 채 1년도 남기지 않은 현 시점에서, 이 나라의 상황은 과거의 어느 때 보다 여러 가지 위기를 겪고 있다. 녹색정치의 입장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생태사회로의 전환은커녕, 환경 정책은 끝도 없이 역행하고 있다. 4대강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수십년 동안 이어져 온 하천법의 발전 과정을 역행하는 ‘친수구역 특별법’을 제정하고 활용한 경험은 이제 ‘산지관광 특구법’으로 업그레이드되어 돌아와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추진 등 국립공원을 위협하고 있다. 지난달 확정된 제7차 전력 수급기본계획은 신규핵발전소 4기 건설을 목표 발표했고, 한수원은 이 목표를 무리없이 달성하고자 의료봉사를 통해 영덕 지역주민들의 환심을 사려는 노력 기울이고 있다.

지금의 상황은 과거의 정치의 실패 혹은 부재로부터 기인한다. 과거의 환경 운동, 녹색 활동의 반복된 실패는 개발 세력들에게 ‘한 번 삽을 뜬 사업은 강행할 수 있으며, ‘먹튀’ 후에도 별 뒷탈 없이 더 큰 먹잇감을 찾아 나설 수 있음’을 학습시켰다. 이러한 학습이 가능했던 것은 대규모 개발사업에서 이익은 소수가 챙기고, 그 뒷감당은 국민 전체와 미래세대가 하게 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무지’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누군가 큰 이익을 얻을 때, 그 언저리에서 콩고물이라도 떨어지기 바라는 사람들의 ‘욕망’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실패를 극복하고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이제는 자기만족적인 운동을 넘어 시스템의 변화를 만들어 내야한다. 그리고 그 방식은 과거 진보정당 내에서의 녹색 운동의 흐름처럼 한편으로는 제한된 논의 안에서 ‘부문’운동으로만 사고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선언적인 차원에서 호명되는 차원에 그치는 과오를 넘어서야 한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기존의 한계를 뛰어 넘어 현실적인 진보적 녹색 정치의 시기로 전환하기 위하여, 반회귀적이며 반봉건적인 녹색정치, 반자본주의적인 녹색-노동 정치라는 반정립적인 지향성을 제시함과 동시에, 녹색의 문제를 세대간 분배정의와 세대내 분배정의의 틀로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이러한 틀 역시 여전히 충분히 구체적이지 못하며, 많은 한계와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다. 다만 이 발제문이 그 간의 쉽지 않은 진보 정당의 역사 속에서 녹색 운동 영역의 역사를 한 번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되어, 그 한계를 극복하고 ‘녹색 정치’로 나아가려는 논쟁에 불을 붙이는 역할을 한다면, 발제자의 소기의 목적은 이미 충분히 달성 된 것일 테다.

또한, 부디 이러한 논쟁이 더욱 발전되어 지금까지의 어려운 진보정치의 시대를 넘어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려는 진보결집 더하기의 길을 더욱 튼튼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하나의 의미있는 좌표가 되기를 바란다.<끝>

<참고>

(29) 관련기사: 매일노동뉴스, 황우석 사태의 끝에… 말(言)과 침묵

(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59988)

(30) 노동당 게시판: Re: 적-녹정치를 무시했던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전철을 되밟지 말아야

(www.laborparty.kr/bd_member/463852)

(31) 노동당 게시판: 당원이 실천하면 4대강을 살릴수 있습니다! 당원 실천 사항 (제안)

(www.laborparty.kr/bd_member/701408)

(32) 노동당 게시판: 녹색사회당이라는 잊혀진 그리고 버려진 꿈에 대하여

(www.laborparty.kr/bd_member/1603036)

(33) 사실 진정성이나 생태적 감수성에 대해서도 할 말은 많다. 노동당 2013년 당대표선거 당시 나도원 후보의 공약 중 ‘마지막 “약속” ⑦ 녹색좌파의 곧은길과 신작로에 동행하자!(www.laborparty.kr/bd_member/1458346)’에서 ‘녹색좌파’의 길을 ‘곧은 길’과 ‘신작로’로 비유한 것을 보고 생태적 감수성의 빈곤을 느낀 것은 단지 필자가 과민한 탓일까? 어쨌든, 이러한 문제는 여기서는 논외로 한다.

(34) 흔히 ‘지속가능한 발전(SD: Sustainable Development)’으로 불리는 개념의 풀네임은 ‘환경적으로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발전(ESSD: Environmentally Sound & Sustainable Development)’이다. 이렇게 줄여 부름으로서 발생한 가장 큰 오해는 지속가능한 발전이란 개념이 ‘발전’ 그 자체가 계속 지속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오해를 없애기 위해 ‘sustainable’을 ‘지속가능한’으로 번역하기 보다는 ‘(환경이) 지탱가능한’ 발전으로 번역해야한다는 주장도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35) 다만 자연 시스템을 다 담아 낼 수 없는 경제학의 용어를 생태학의 용어로 대체했을 뿐이다.

(36) 관련기사: 오마이뉴스, 건설노동자, 세계최초 ‘도시환경운동’ 주도하다

(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057200)

(37) 조홍섭 편역, 1984, 현대의 과학기술과 인간해방, 한길사

<참고문헌>

김현우, 2009, 당 정치활동의 방향과 부문위원회의 위상에 대하여, 부문위원회 토론회 “이제는 말할 수 있나?” 발제문.

문재현, 2004, 민주노동당과 녹색정치, 청년환경센터 주관 토론회 “녹색정치 얼마나 진전되었나?” 발제문.

심재옥, 2009, 당의 부문위원회 운영 어떻게 할 것인가?, 부문위원회 토론회 “이제는 말할 수 있나?” 발제문.

이범, 1995a, 생태주의 세계관에 대한 비판적 고찰, 성균 56호 66-75.

이범, 1995b, 좌파의 눈으로 환경위기를 보자, 학회평론 10호 42-66.

이헌석, 2009, 탈핵에너지 정보센터 구성을 위한 질문들, energyjustice.kr.

최광은, 2004, 녹색좌파(Green Left)를 꿈꾼다, 청년환경센터 주관 토론회 “녹색정치 얼마나 진전되었나?” 발제문.

한재각, 2003, 녹색정치에 관한 짧은 의견 -과학기술운동 활동가의 시각에서, 제1회 녹색정치포럼 “한국 녹색정치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가칭)녹색정치준비모임 결정을 제안한다” 의견문.

[Web sites]

노동당(구 진보신당) 게시판 www.laborparty.kr

삶이 보이는 창 게시판 www.samchang.or.kr

에너지정의행동(구 청년환경센터) 게시판 www.energyjustice.kr

정의당 진보정의연구소 www.justicei.or.kr

진보신당 녹색평당원모임 카페 cafe.daum.net/greenjinbo

진보신당 녹색위원회 카페 cafe.daum.net/newjinbogreen

블로그 이미지

[Lu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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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결집+]에서 기획하고 있는 <진보정치 혁신을 위한 연속토론회>의 첫 번째 토론으로 ‘진보정당 안에서의 녹색정치, 성찰과 전망’을 8월 29일 진행했다. 짧지 않은 시간의 진보정당과 녹색정치의 과거, 현재, 미래를 조망한 글이다. 이현정씨가 발표한 주제글을 필자와 주최 측의 동의를 얻어 게재한다. 발표문의 분량이 많아 2회에 나누어 게재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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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진보정치 영역에서 환경, 혹은 녹색이 호명되기 시작한 지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 안에 진정한 ‘녹색정치’가 있었는가에 대한 평가는 쉽게 결론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진보정치의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으로 나아가는 것을 당면 목표로 하는 진보결집 더하기는 진보정치가 결집하는 지금의 과정이 양적 확대에 머무르지 않고, 이전 시기의 진보정치에 대한 평가와 혁신의 과정이어야 한다고 여기고, 그 혁신에 대한 논의의 첫 번째 주제로 ‘녹색정치’를 선택했다.

진보정당 안에서의 녹색정치는 이제 막 만나려는 단계라기보다, 이미 오래 전 시작된 것으로 보는 것이 보다 타당하다. 단적인 예로 이미 15년 전인 2001년 청년환경센터(준)가 제안하고 민주노동당 교육위원회, 청년진보당 환경위원회 등이 참여한 긴급토론회 <진보정당, 환경운동 그리고 녹색정치>의 발제 중 하나의 제목이 초안에서 제시된 토론회 제목과 거의 유사한 <진보정당과 녹색정치, 과연 어떻게 만날 것인가>였음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논의를 시작으로 진보정당 안에서의 녹색 관련 활동들은 환경위원회/녹색위원회 설치와 포럼 운영, 다양한 관련 기관의 설립, 총선 및 지방선거에서의 녹색후보 출마 등 양적으로 매우 풍부한 양상을 보였다. 또한, 2012년에는 기존의 진보정당 흐름들과는 구분되어 녹색을 전면으로 내세운 ‘녹색당’이 창당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8년 진보신당 창당 시 전면에 내건 ‘보다 녹색으로, 보다 적색으로’라는 슬로건으로 상징되는 진보적 녹색정치의 포부가 8년이 지난 지금 목표를 달성했다고 보는 사람은 없으며, 여전히 앞으로의 지향성으로만 떠돌 뿐이다. 또한 20년 전 지적된 좌파들이 환경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비판(1)과 함께 생태주의에 대한 오해들은 여전히 유효한 지점이 많다.

이 글에서는 앞으로의 녹색정치에 대한 논의를 진전시키기 위해 우선 진보정당들의 역사 안에서 ‘녹색’의 가치가 어떻게 자리 잡고 실현되었는가 살펴본다. 특히 녹색의 논의가 상대적으로 풍부했던,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의 내부에서 진행되거나 논의되었던 관련 사안들을 가능한 구체적으로 정리하였다. 또한, 이 과정에서 달성된 성과와 드러난 문제점들에 대해 정리하고, 이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전망을 제시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2. 진보정당 안에서의 녹색정치 흐름들

2.1. 개요

진보정치 내에서의 녹색정치와 관련된 발전과정과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먼저 진보정당별 녹색활동, 녹색 정치와 관련된 사안들을 정리하였다.(2) 2002년 녹색연합과 환경운동연합 등이 주축이 되어 창당한 녹색평화당이나 이후 사민당과 녹색평화당이 합당한 녹색사민당 등은 정당으로서의 일상적인 정치활동을 거의 수행하지 못하고 실험적인 형태에 가까웠으므로(최광은, 2004) 여기에서는 제외하였다. 또한, 이 부분은 진보정당 역사 안에서의 녹색정치 흐름을 파악하는 데 주 목적이 있기 때문에, 최근의 사안들 보다는 녹색정치와 관련해 많은 논쟁이 있었던 2000년대의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활동과 논의들에 보다 무게가 실려 있음을 미리 밝힌다.

2.2. 민주노동당

민주노동당은 강령에 지속가능성을 향한 통합적 환경정책, 미래지향적인 대안사회로의 지향(환경친화적, 에너지 저소비형 산업구조), 환경의식의 확산과 심화를 위한 환경교육 등을 명시하며 ‘친환경적인 대안사회’로의 지향을 명문화했다. 2002년 지방선거에서는 서울시장 이문옥 후보에 대한 환경운동연합의 평가를 두고 논쟁을 벌이기도 했고, 송철호 울산시장 후보는 고속철도 울산역 유치 촉구로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한 당원이 중앙당 게시판에 ‘고속철도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일관된 정책’을 요구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러한 흐름은 이후 환경위원회의 설치로 이어졌다.

■ 민주노동당 환경위원회의 설치와 2004년 총선

민주노동당 환경위원회(준)는 중앙당의 판단에 따라 위원장 및 간사가 선임되는 여타 위원회와는 달리 2003년 말 당원들이 자발적으로 모임을 구성하고 위원장과 간사를 스스로 선출하면서 설치되었다. 이후 2004년 총선을 위해 여러 차례 토론을 거치며 ‘사회적 약자를 위한 자원순환, 환경정의, 지속가능성’ 원칙을 중심으로 세운 ‘녹색나라를 위한 민주노동당의 약속’이라는 이름 하의 여러 공약을 제안했다. 구체적인 공약의 내용으로는 ‘2035년 핵 없는 나라’, ‘핵발전소 추가 건설 중단 및 단계적 폐지’, ‘재생가능한 에너지 체계로의 전환을 위한 에너지 시나리오’, ‘생태농업으로의 전환을 위한 사회 경제적 프로그램’, ‘대중교통중심의 전환정책’, ‘대형댐 건설 중단’,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개정’ 등이 포함되었다(문재현, 2004).

그러나 한 편으로는 민주노동당 전북도지부가 중앙당이나 환경위(준)의 입장과는 다르게 새만금 사업의 “조속한 완공”을 공약으로 내걸며 “갯벌 죽이기”라는 비난을 받고 사과를 하기도 했다. 또한, 총선 직후 환경위원회(준)는 노회찬 당선자의 강연 중 제기된 “분배를 통한 성장론”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생태적으로 지탱가능하며 평등하고 민주적인 발전”을 주장하며 논의를 심화시키기 시작했다.

■ 2005년 황우석 논문조작 사태

2005년 가을 황우석 박사의 논문조작 사태의 진실을 밝히는 데에는 많은 사람들이 관여되어 있었지만, 정당 차원에서는 민주노동당이 그 논란의 가운데 섰다. 한재각 정책연구원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최순영 의원을 비롯한 현역 국회의원 10명을 활용해 난자 출처와 연구비 관련 자료 요청 등을 하며 황우석 박사에게 압력을 가했다. 2005년 10월 7일 <조선일보>는 “황우석, ‘민주노동당’ 때문에 연구 못할 지경”이라는 눈에 띄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3) 이후에는 송태경 경제민주화운동본부 정책실장과 노현기 부평구위원회 부위원장 등이 제기한 생명윤리와 관련된 글들로 온라인상에서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이 상황에서 권영길 임시당대표, 박용진 대변인 등은 “윤리 기준 지키라는 것이 당론, 진위 논란은 개입할 문제 아니다.”며 진화에 나섰으며, 이러한 대응은 당내에서 또다른 논란을 야기했다.

■ 2007년 녹색정치 선언, 녹색정치 사업단 그리고 17대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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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20일 민주노동당 당직자 및 지방의원 등 34인의 ‘녹색정치선언 제안자 일동’은 ‘1천명의 ‘녹색정치선언’ 참가자를 모집한다’는 제안문에서 “2007년 대선을 맞이하는 시점에 민주노동당은 더 이상 한국사회의 희망이 되고 있지 못하다”면서 “민주노동당은 낡은 사고와 관행, 무기력에서 벗어나고 변화해야 한다. 희망을 이끌어낼 변화의 방향은 녹색”이라고 제안취지를 밝혔다. 이러한 선언은 과거 많은 경우에 공약과 공약, 가치와 가치가 충돌할 때 결정적으로 환경의제가 우선순위에서 밀리거나, 2005년 황우석 논문조작 사건 당시 여론을 이유로 당 기관이 황우석에 대한 문제제기를 발표하지 못하도록 한 ‘함구령’을 내린 사례, 2006년 북핵사태, 2007년 면세유 파동 등 결정적 순간에는 ‘녹색가치’를 외면했다는 평가 등에서 촉발되었다.(4)

이를 바탕으로 구성 된 녹색정치사업단(단장: 심재옥)은 이후 당내 대선후보 경선에 참여한 권영길, 노회찬, 심상정 세 후보에게 생태·환경 정책에 질의를 보냈고, 답변 결과를 당원 100으로 구성된 ‘녹색정치 100인위원회’가 평가하도록 했다. 평가 결과를 보면, 세 후보는 5점 만점에 각각 3.07(권영길), 3.05(노회찬), 3.13(심상정)으로 ‘B’ 평점을 받았다. 세 후보 모두 공통적으로 환경세 도입, 지역 먹을거리 체계 구축, 재생가능 에너지로의 전환, 재생가능 에너지 북한 지원 등을 중요한 생태·환경 정책으로 내세웠다. 녹색정치사업단은 “여전히 ‘성장’에 집착하는 것이나 토건국가를 개혁하는 구체적 방안과 관련해서는 세 후보 모두 미흡했다”며 “세 후보의 정책에서 생태·환경 정책이 주변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으며, 세 후보 모두 생태ㆍ환경 정책을 자기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지를 따지는 ‘진정성’ 지표에서는 낮은 점수(평점 ‘C’ 이하)를 받았다.(5)

2.3. 청년진보당-사회당

청년진보당-사회당에서도 녹색은 매우 중요한 가치로 지향되었다. 명확하고 급진적인 반자본주의의 기치를 내세우고 녹색좌파를 지향하였으며, 구체적인 활동으로는 공식적으로 당 내부 조직은 아니었으나 ‘청년환경센터’를 중심으로 많은 당원들이 녹색 관련 활동을 활발하게 이어나갔다.

■ 청년환경센터

청년진보당-사회당의 녹색정치와 밀접하게 연관된 청년환경센터는 정확히는 당 내부조직은 아니었다. 이와 관련해서는 대표자 스스로 “1999년 당시 회원의 대부분이 청년진보당 당원 혹은 지지자들로 구성되어 있을 때에도 우리는 청년진보당과 ‘아무런 관계’ 없는 다만 ‘진보정치(혹은 녹색정치)가 잘되기를 바라는 이들’이었다. 이는 이후 회원의 구성이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 또는 무당파로 다양해지면서도 그대로 유지되었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고 본다. 상근자, 혹은 회원들이 개인적으로 지지하는 정당은 있더라도 청년환경센터와 이후 만들어질 조직은 정당의 하위개념이 아니라 정당과 함께 진보정치를 만들어가는 구성원으로써 작용할 것이며, 공동사업 역시 진보정치 내의 구분과 상관없이 내용을 중심으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본다.”고 밝히고 있다(이헌석, 2009).

그렇지만 청년진보당-사회당의 많은 학생·청년 당원들이 결합하여 활발한 활동을 펼쳤던 것은 사실이다. 대학생 현장환경활동 및 지역 연대사업을 펼쳤으며, 직접적으로 정치영역과 관련된 활동으로는 2002년 지방선거에서 ‘올바른 녹색정치 실현을 위한 선언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청년환경센터는 10년간의 활동을 이어가다 2010년 에너지정의행동으로 단체명을 바꾸고, 단체의 활동범위를 탈핵과 에너지전환 운동으로 집중해 현재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2.3. 진보신당-노동당

■ “보다 적색으로, 보다 녹색으로”

-민노당 분당 및 진보신당 창당 시기의 적녹정치에 대한 기대와 실망

민노당 분당 전, 심상정 비대위의 ‘제2창당을 위한 평가와 혁신안’에서부터 녹색정치, 혹은 적녹정치는 신당의 핵심적인 활동방향으로 제안되었다.(6) 새로운 슬로건인 “보다 적색으로, 보다 녹색으로”를 내세우며, 녹색의 가치를 노동과 함께 전면에 내세우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였다. 이러한 분위기는 2008년 4월 1일 한반도 대운하 반대 종교인 순례단이 순례 50일만에 부산 을숙도에 도달하는 일정에 맞추어 을숙도 물문화광장에서 ‘150인 녹색지지 선언’을 발표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이 선언에서는 지금은 노동당, 녹색당, 무당적자, 정의당, 진보결집+ 등으로 흩어진 많은 활동가 및 당원 150명이 ‘생태’를 주요한 기치로 내 건 진보신당을 지지하였으며, 진보정당 내에서의 녹색정치의 성장을 기대하는 많은 이들이 있음을 보여주었다.(7)

■ 2008년 총선과 녹색정치위원회/에너지정치센터 설립

창당 시의 녹색정치에 대한 뜨거운 기대를 받아, 직후 치러진 총선에서는 녹색비례후보 추천위를 구성하였다. 그러나 결국 녹색 후보를 내지 못했고, 이 후 당 게시판에서 “보다 적색으로, 보다 녹색으로는 사기다”라거나 “무늬만 생태”로 갈까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이어졌다. 이에 대해 당 내부에서 자성의 소리와 함께 녹색화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이어졌다.

이러한 주장은 총선 직후 조승수 전 의원을 중심으로 당내의 녹색정치위원회(준) 설치와 당 외부의 에너지정치센터(현재 (사)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설립으로 이어졌다. 이 뿐만이 아니라 같은 시기 녹색평당원모임도 구성되었다. 이러한 활동은 녹색정치포럼, 녹색평론 읽기모임 등 향후 오랜 기간동안 이어진 당원들의 자발적인 모임의 출발점이 되었다.

■ 진보신당 태양광발전소 구상과 지리산 초록배움터

2008년 10월 8일 김현우 녹색특위 간사의 게시판 제안글(8)로 시작된 ‘진보신당 태양광발전소 프로젝트’는 2009년 8월 과거 민주노동당 남원 연수원을 이어받은 지리산 초록배움터의 개관과 이후 2010년 3월 6일 햇빛발전소 건립식으로 이어졌다. 당원, 지지자들의 유가환급금을 모으고 발전차액지원제도를 활용하여 3kW 태양광발전기가 추가로 설치되었다. 이 때, 풍력 발전기, 태양열 쉐플러 조리기, 자전거 발전기, 생태뒷간, 빗물처리시설 등이 도입되며 작은 발전소이자 생태교육공간으로 거듭났다.

■ 2009년 4.29 재보궐 선거와 녹색노동자 조승수 후보 지지선언

2009년 4월 치러진 재보궐 선거에서는 녹색특위 조승수 위원장이 출마하면서 이명박 정권의 ‘불량성장노선’에 대항하는 ‘서민성장노선’을 걷기 위한 ‘북구혁신전략’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이 북구혁신전략에는 ‘북유럽형 교육특구’, ‘일자리 안정특구’, ‘서민복지 일등특구’와 함께 ‘태양과 바람의 특구’라는 전략이 포함되었다. 이러한 녹색공약으로 “중공업의 도시인 울산에서 녹색 후보를 표방하는 조승수가 노동자 정치 운운하며 노동자 밀집 지구에서 나온”다는 비아냥과 함께 조승수가 대표하려는 산업도시 울산과 그가 지향하는 녹색 사이에 모순이 지적되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사실 이것은 ‘평등, 생태, 평화, 연대’라는 슬로건 하에 새롭게 진보정당운동을 일궈내겠다고 선언하고 민주노동당과 분당까지 감내해낸 진보신당에게 해당되는 도전”이라는 평과 함께, 지속불가능한 한국사회 전체를 위한 중대하고도 상징적인 도전(9)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며, 환경/시민사회단체 활동가 40여명의 “녹색 노동자 조승수 후보 지지선언”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10)

물론 실제 그의 당선에서 녹색의 지분이 얼마나 되는가를 평가하는 건 쉽지 않다. 그러나 이후 조승수 의원의 행보는 송전탑 갈등 해결,(11) 녹색일자리 전환,(12) 재생가능에너지 입지갈등 해결(13) 등 녹색사회를 위한 다양한 논의가 본격화 되는 방향으로 꾸준히 이어졌다.

■ 녹색특위 간사직 폐지와 부문위 토론회

조승수 녹색특위 위원장의 4.29 보궐선거 당선으로 원내정당이 되었음에도, 아이러니하게도 그 직후인 5월 말, 반상근직으로 유지되던 녹색특위 간사직이 없어지는 상황이 벌어졌다. 김현우 녹색특위 간사는 “중앙당직을 사직했다는 것은 녹색특위 사업을 담당할 실무자가 더 이상 배치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부문/과제별 위원회에 별도의 인력과 재정을 두지 않는다는 지도부의 방침에 따른 결과입니다.”라고 밝히며, 이러한 방침은 “당내 논의를 통해 합리적으로 또 민주적으로 결정하고 합의하면 되지만, 그런 과정은 존재하지 않았”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또한, 2008년 5월부터 중앙당에 녹색정치위(준)의 인준을 수차례 요청했지만 당시의 대표단이 “부문/과제별 위원회 건설 원칙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라는 것과 녹색정치위를 인준할 경우 다른 부문위도 도미노처럼 인준할 수밖에 없다는, 그리하여 당 조직과 예산이 방만해질 수 있다”는 이유로 이를 번번이 유보시켰다며, 부문위원회의 위상에 대한 문제제기를 했다. 이에 대해 한 당원은 “그 건 사직이 아니라 해고”라는 답글을 남기기도 했다.(14)

이러한 문제제기는 6월 말 ‘제2창당에도 없었고 당대회에도 없었던 부문위원회 토론회-이제는 말할 수 있나?’라는 토론회로 이어졌다. 이 토론회에는 성정치기획단, 여성정치위원회(준), 장애인위원회(준), 중앙당 대협실 등이 참여하였다. 이 토론회에서 여성정치위원회(준)의 심재옥 당원은 부문위에 가해지는, ‘방만하다’, ‘당 중심이기 보다 부문 중심이다’, ‘비효율적이다’는 비판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하며 “당 운영 시스템이 없었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하고, 부문위원장이 참여하는 중앙집행위원회 회의 신설을 제안했다(심재옥, 2009). 김현우 전 간사는 “현재의 부문위원회와 관련된 논의는 당의 성격 규정에 관한 것이자, 2010 지방선거를 준비하는 내용과 방식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며, “이렇게 좋은 인적 자산을 가진 부문을 보유한 진보정당은 없었고, 이렇게 적절하게 부문의 활동 의제들이 존재한 한국 사회의 시기도 없었다. 한참 잘 자랄 작물이 혹여 웃자라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옛사람들은 ‘기우’라 불렀고, 자라고자 하는 작물에 물 주기를 주저하여 생육을 망치는 일은 대개 ‘과오’라 부른다.”며 부문 강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김현우, 2009).

■ 서울녹색위 모임과 북한산 케이블카 반대운동, 그리고 장애인위원회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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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 진보신당 서울시당 녹색특위 북한산 지키기 2차 산행(15)

2009년 7월, 서울시 11개 당협의 구성원이 모여 서울시당 녹색특위(위원장: 황혜원) 모임이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시작된 사업은 북한산 지키기 긴급행동 산행으로 이어졌고, 첫 산행에서 50여명의 당원들이 참여했다.(16) 이 행동은 국립공원 케이블카 반대 산행으로 이어져 이후 몇 년 동안 지속되었다. 그 중 2010년 11월의 장애인위원회와 함께 준비한 ‘장애/비장애인이 함께하는 북한산 생태산행’(17)에서는 정부가 케이블카 건설의 구실로 삼는 장애인들과 함께 산에 오르며, 반생태적인 케이블카 설치보다는 일상생활에서의 장애인 이동권을 위한 노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후 서울녹색위 모임은 생활 중심 녹색의제들-도시농업, 적정기술, 도시 재생에너지 등-과 관련된 활동들을 이어나갔으며, 이후 부산, 경기 등 타 지역의 녹색위 모임의 선례가 되기도 했다.

■ 4대강 심판론, “흐르는 강물처럼”과 2010년 지방선거

2009년 봄 시작된 경인운하 반대 오체투지, 이어진 4대강사업 저지농성의 열기는 2010년 지방선거로 이어졌다. 3월 22일에는 물의 날을 맞아, 노회찬 서울시장 후보, 심상정 경기지사 후보, 김상하 인천시장 후보가 함께 ‘6.2지방선거는 무상급식과 함께 4대강사업 심판 선거입니다’는 제목아래 진보신당이 4대강 사업을 저지하고 2천3백만 수도권 주민의 식수를 지키겠다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즈음 중앙당에서 기획된 4대강 기록 및 답사 사업 “흐르는 강물처럼”과 서울시당 녹색위원회의 광화문 1인 릴레이 시위는 9월까지 이어졌다.

■ 2012년 총선과 녹색당 창당

진보신당은 2011년 통합-독자 논쟁과 탈당사태의 충격이 채 정리되기도 전에 2012년 3월 4일 사회당과의 합당을 추진하고, 직후 원외정당으로서 2012년 제 19대 총선을 맞게 되었다. 이 때, 성미산 운동과 생협운동의 경력을 가진 이명희 후보가 전국 비례후보 기호3번으로 배정되며 녹색비례후보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명희 후보는 당이 키워내거나 당의 녹색 논의를 주도해 온 인물은 아니었다.(18) 또한, 총선 시 중앙당이나 후보의 에너지 환경 등 녹색의제 접근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당원도 있었다.(19) 이 당원은 총선 직전에 창당된 녹색당과의 적-녹 총선연대를 제안하기도 했는데(20) 녹색위원장은 이에 대해 “같은 맥락의 이야기”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으나 중앙당 차원의 적-녹 연대의 성과는 없었다.

또한, 강북 갑의 김일웅 후보는 북한산 국립공원 입구의 초호화콘도 건설 이슈를 선거의 최대 현안으로 제시하며, 지역의 연대를 꾀했다.

■ 2013년 재창당 과정에서의 ‘녹색’의 호출

2012년 총선 이후로 미루어 놓았던 재창당은 당명 논의를 거쳐 2013년 6월 ‘녹색사회노동당’을 표결에 붙였지만 부결되었다. 사실 진보신당 창립시기의 ‘보다 적색으로, 보다 녹색으로’라는 슬로건에서 시작된 당의 정체성으로서 녹색의 호출은 그 사이에도 몇 차례 논쟁을 불러왔다. 2009년 초 정태인 당원은 녹색혁명당을 제안하며 논쟁을 재점화시키기도 했으며,(21) 2011년 6월 김현우 녹색위원장의 녹색사회당(22) 제안과 좀 더 발전된 형태의 장석준 상상연구소 연구기획실장의 녹색신좌파당(23)의 제안 흐름 속에서 ‘녹색사회주의연대’라는 정파를 형성했고, 2013년 당명 논쟁은 그 연장선상에 있었다.(24) 그러나 이 흐름에 대해 “그 간의 ‘진보신당’과 부설 연구소인 ‘상상연구소’의 활동을 볼 때, 당은 이미 ‘녹색지향’의 구현에 실패”(25)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으며, 이 평가는 이 때까지의 당내 녹색 정치의 위상을 돌이켜 볼 때 상당히 타당한 평가로 보인다. 결국 2013년 7월 임시당대회에서 당명은 ‘노동당’으로 결정된다.

■ 2015년 당대표 선거와 그 후

2015년 노동당 당대표 선거의 최대의 화두는 ‘진보재편’이었다. 이 과정에서 당대표단 선거에 나도원 후보 등을 출마시킨 신좌파당원회의는 ‘녹색좌파 대중정당’을 전면에 내걸며 또 다시 당내 정치의 전면에 녹색을 호출했다.(26) 여기에서 나도원 후보는 “현재 노동당은 ‘녹색’좌파로 나아갈 준비를 못했고, 녹색당은 녹색‘좌파’로 나아갈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바로 지금이 ‘녹색좌파 대중정당’을 위한 당 혁신과 내외부의 결합, 노동당과 녹색당 그리고 새로운 운동과 노동혁신세력이 협력하는 ‘녹색좌파 정치연합’의 구성”이라는 구상을 제안했다.

그러나 이러한 선언은 이전의 ‘녹색사회주의’ 논의와 마찬가지로 당의 현실과는 상당히 괴리 된 것이었다. 노동당의 녹색위원회는 이미 1년 이상 재건되지 않고 있는 상태였고, 이전의 녹색 관련된 일상 사업들도 대부분 정지되어 있었다. 나경채 대표 당선 이후, 선언적으로 녹색을 호출하는 방식이 아닌 당의 체계로부터 녹색 활동을 이어가려는 노력은 4월 녹색위원회(준) 활동의 시작으로 이어졌으나 이후 6월 당대회에서 진보재편 당원총투표 부의 안건이 부결되며, 녹색위원회(준)의 구성원들도 여러 흐름으로 갈라져 활동이 지속되고 있지 못한 상태이다.

2.4. 녹색당 창당(27)

2011년 말, 녹색당은 창당 발기인대회, 2012년 총선 직전에 정당 등록을 하고, 본격적으로 정당정치에 뛰어들었다. 녹색당의 창당 주역들은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시민사회를 바탕으로 2003년 녹색정치준비모임-2004년 초록정치연대-2007년 초록당을 준비하는 모임 등으로 이어져 온 흐름,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과 함께 과거 진보정당에서 녹색 정치를 갈망했던 사람들의 흐름도 합류했다.

민주노동당-진보신당 내에서 녹색정책 분야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한재각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도 녹색당 창당 시 합류했다. 그의 고민이 매우 오래된 것임은 이미 2003년 제1회 녹색정치 포럼의 의견문의 다음과 같은 대목에서 알 수 있다.

“녹색이념의 정치세력화를 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진보정당에 대한 논의를 피해나갈 수는 없는 이야기일 것이다. 과학기술운동 활동가로서,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정하는데 있어 고민의 핵심은 “진보정당 내 녹색파”가 될 것인가, “녹색당 내 좌파”가 될 것인가에 있다. 그러나 사실상 우리의 정치현실은 이런 고민 자체가 비현실적으로 보이게 할 만큼 척박할 뿐만 아니라, 앞서 나간 진보정당운동이든 뒤를 따르려는 녹색당이든 정치적 실천과 경험이 대단히 부족하다고 보여진다. 따라서 두 가지 갈림길에 대한 선택은 차후로 미루어 둘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녹색이념의 정치세력화를 추구하는 그룹은 “녹색당 내 좌파”라는 문제의식이 제기되는 것에 대해서 고민해볼 수 있었으면 한다(물론, 그 고민은 내 자신의 몫이기도 할 것이다(한재각, 2003)).

이러한 고민은 단지 한 개인의 고민이 아니라 진보 정당 내에서의 녹색정치의 실현에 한계를 느낀 많은 구성원들이 녹색당 창당에 합류하게 된 결과를 낳았을 것이다.

2.5. 통합진보당-정의당

통합진보당의 녹색 관련된 흐름은 진보신당 시절부터 녹색 노동자임을 자임한 조승수 의원의 존재와 더불어 2012년 총선 당시 통합진보당 개방형 비례대표 후보로 김제남 녹색연합 녹색에너지 디자인 위원장을 확정·당선 시키는 방향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은 현재의 정의당으로 이어졌다.

■ 정의당 탈핵 에너지전환 특위

2014년 11월, 김제남 의원과 조승수 전 의원을 공동 위원장으로 탈핵에너지전환 특위를 출범시켰다. 출범 당시 당면과제로 수명이 끝난 노후원전의 재가동을 막아내는 것과, 노후원전 국회 검증특위 구성을 제안하였으며, 주요 의제로 1) 노후원전 폐쇄, 2) 신규원전 철회, 3) 사용후 핵연료 공론화, 4) 정의당 탈핵에너지전환 로드맵 등 핵 없는 에너지전환 계획 공론화 등을 주요 의제로 내세웠다.

■ 정의당 진보정의연구소 -생태사회전환포럼

정의당 부설 진보정의연구소(28)는 2014년 2월부터 ‘생태사회전환 포럼’을 개최해왔다. 천호선 대표는 “21세기 한국형 사민주의 실천의 핵심과제 중 하나로 생태주의를 적극 수용해야 한다”며 “생태문제는 이제 하나의 정책 분야가 아니라 총체적인 사회혁신의 기본적인 가치 지향이 되어야 한다. 생태문제에 대한 기존 진보의 태도 역시 인간 중심의 성장만능주의, 소비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을 무시할 수 없다. 생태전환을 위한 장기적이고 전면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이를 단계적으로 실천해나가는 것이 진보정치의 핵심 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밝혔고,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2015년 8월 현재까지 총 10차의 포럼을 가졌다. 총 10차의 포럼 중 7차례의 포럼이 에너지 전환과 관련된 내용으로 편중된 경향을 보였다.

<참고>

(1) 이범(1995b)은 좌파는 환경문제를 자본주의의 폐해로만 간주한다, 환경운동을 시민운동의 부분집합이자 신사회 운동의 일부로 치부한다, 그리고 환경문제에 둔감하다는 지적을 하며, 이러한 관점을 넘어 좌파의 이념과 생태주의가 만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2) 이미 그 자체로 충분히 복잡한 진보 정당의 역사 속에서 녹색 정치 관련 활동들을 정리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정리를 위해 온라인 상의 기사들, 게시판의 흔적들을 중심으로 재구성하였기에 정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을 수 있음을 양해 바란다.

(3) 관련기사: 프레시안, ‘제보자’ 윤민철 PD는 사실 외롭지 않았다

(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20488)

(4) 관련기사: 레디앙, 민주노동당 ‘녹색파’ 세규합에 나섰다(www.redian.org/archive/18091)

(5) 관련기사: 프레시안, 녹색정치 한다는 민노당 후보들, 녹색 점수는 ‘B’

(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34468)

(6) ‘제2창당을 위한 평가와 혁신안’에서 제시한 새로운 적녹정치의 필요성은 민주노동당에 잔류파들로부터, “‘노동’을 진보의 다양한 가치 중의 하나로 격하시킴으로써 계급문제를 희석시키는 한편, 남북문제를 국가 대 국가 관계로 설정함으로써 미 제국주의에 의한 민족분단과 미 제국주의의 남한 지배라는 제국주의 문제(또는 민족문제)를 아예 배제시키고 있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관련기사: 심상정 비대위는 ‘쿠데타’를 획책하고 있다!

(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825941).

(7) 관련 기사: 레디앙, 생태활동가 150명, 진보신당지지(www.redian.org/archive/20339)

(8) 노동당 게시판: 유가환급금 모아 진보신당 발전소를 만들면 어떨까요?

(www.laborparty.kr/bd_member/572946)

(9) 관련기사: 레디앙, 울산북구의 또 다른 화두 ‘그린 조’(www.redian.org/archive/23830)

(10) 관련기사: 레디앙, 조승수가 바로 녹색 시대정신(www.redian.org/archive/24284)

(11) 관련기사: 한겨레, 송전탑 갈등, 발전소 소형화·근거리 공급이 해법

(www.hani.co.kr/arti/society/area/363723.html)

(12) 관련기사: 미디어다음, 조승수 의원 “우리나라 녹색성장 정책 방향 우려돼”

(media.daum.net/breakingnews/view.html?cateid=100000&newsid=20090715091809160&p=mydaily)

(13) 관련기사: 시민운동연합신문, 풍력발전 건설위한 가이드라인 마련 시급

(www.ngonewsi.com/news/article.html?no=6980)

(14) 노동당 게시판: 중앙당직을 사직하며 + 당에게 부문은 무엇인가

(www.laborparty.kr/bd_member/649730)

(15) 노동당 게시판: [사진]북한산 지키기 2차 산행(www.laborparty.kr/bd_member/668798)

(16) 노동당 게시판: 생각은 옳지만 체력이 약한 진보신당

(www.laborparty.kr/bd_member/661456)

(17) 관련기사: 프레시안, “등산은 생전 처음, 하지만 케이블카는…”

(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02378)

(18) 오히려 선거를 계기로 당 활동을 활발히 하게 된 경우이다. 이후, 경기도당 녹색위원장과 녹색위원회 할당 전국위원으로 당선되어 활동을 했다.

(19) 노동당 게시판: 중앙당/총선후보의 에너지.환경 등 녹색의제 접근에 대한 아쉬움

(www.laborparty.kr/bd_member/798264)

(20) 노동당 게시판: 진보신당-녹색당의 적-녹 총선연대를 위한 협의를 제안 드립니다

(www.laborparty.kr/bd_member/795040)

(21) 노동당 게시판: 녹색혁명당 선언^^(www.laborparty.kr/bd_member/606628)

(22) 관련기사: 레디앙, 다시 녹색사회당으로 가자(www.redian.org/archive/36899)

(23) 노동당 게시판: 제안문 <진보신당, 녹색신좌파당으로 도약하자> ver 1.0

(www.laborparty.kr/bd_member/755102)

(24) 관련기사: 레디앙, ‘새 진보좌파정당’은 ‘노동-녹색 정당’-진보신당 프로젝트 종료…밀알 역할을

(www.redian.org/archive/2272)

(25) 노동당 게시판: 장석준 당원의 <녹색신좌파당> 이론은 이미 실패한 것

(www.laborparty.kr/bd_member/755173)

(26) 노동당 게시판: “약속” ④ 우리의 답은 ‘녹색좌파 대중정당’입니다

(http://www.laborparty.kr/bd_member/1423575)

(27) 녹색당의 경우 당 활동 대부분이 녹색 정치 활동이므로, 여기에서 다 정리하기보다는 창당 과정과 기존 진보정당과의 관계에 대한 부분만 언급하였다.

(28) 최근 ‘미래정치센터’로 이름을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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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5152107435&code=990304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이 1000일 앞으로 다가왔다. 삼수 끝에 유치한 동계올림픽이 이제 3년도 채 남지 않았는데, 지금 벌어지고 있는 논란은 기존의 대형 국책사업 추진 과정에서 벌어졌던 것들과 매우 유사하다. 올림픽 주최 측은 사업의 경제성과 국격, 매몰비용을 들며 사업을 강행하고, 분산 개최 등 사업방향의 선회를 요구하는 쪽은 환경파괴와 경제효과 추정의 허구성을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동일한 논쟁이 벌어졌던 사업들은 현재 어떤 모습일까.

새만금사업의 경우 소실된 갯벌의 가치를 차치하고, 경제성 평가만을 봐도 ‘밑 빠진 독’이라고 할 만하다. 공동조사단이 총 사업비 약 3조원의 비용을 기준으로 비용편익분석을 한 결과, 시나리오에 따라 편익이 비용의 최대 3.81배에서 최소 1.25배로 산출됐다. 이마저도 법원 감정촉탁 보고서에 따르면 “경제성 평가에서 왜곡 평가의 예로 교과서에 실려도 좋을 만큼” 의도적으로 편익은 부풀리고 비용은 제외시켜 나온 결과이다. 심지어 수질개선 항목은 비용이 아닌 편익으로 포함됐다. 경제성 평가 이후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끊임없이 변경되고 있는 새만금 기본계획에서 총 비용은 22조2000억원까지 늘어났다. 그중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던 수질개선 비용으로만 초기의 총 사업비에 근접하는 2조9000억원이 책정됐다. 이 역시 향후 얼마든지 더 늘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편익은 어떠한가. 투자율이 매우 낮아 2018~2022년을 민간투자 확산단계로 설정한 것을 보면, 미래의 편익을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4대강 사업의 경우도 22조원을 투자했지만, 물부족 지역의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아 이를 근거로 전국에서 댐건설 계획을 다시 추진 중이다. 사업 구간에 남은 것은 극심한 녹조와 정체된 강뿐이다. 더 큰 문제는 사업을 추진할 때와 평가하고 책임져야 할 때의 태도 차이다. “강이 동맥경화에 걸려서 준설을 해야만 한다”던 4대강 사업의 홍보 문구는 협박하듯 연일 TV에 등장해 많이 알지만, “대규모 준설은 환경적인 측면에서 타당성이 낮”으며 “남조류 대량 발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보 건설에 따른 체류시간 증가”라는 국무총리실 산하 조사평가단의 사업평가 결과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업을 추진해 직접적으로 경제적인 이익을 얻는 소수는 뒷감당에 관심이 없다. 이익은 그들 소수가 가져가지만, 손해는 우리 모두가 보는 것이다.

평창 동계올림픽과 관련된 이슈들도 예의 사업들과 다르지 않다. 초기 8조8000억원이던 사업 예산은 전체 공정률이 미미했던 2014년 말 이미 13조원까지 뛰었다. ‘경제적 효과 평가’에서 추정한 직접적인 효과 21조원에는 정부 지출 3조원 등 비용까지 넣어 비난을 받기도 했다. 나가노의 사례를 보면 향후 유지 관리의 경제적인 문제는 훨씬 심각할 수 있다. 지금이라도 보다 나은 대안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환경적인 면에서 최고의 쟁점이 되고 있는 가리왕산 활강경기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벌목률이 높다고 해도, 나무를 키우는 토양과 물의 체계는 아직 온전하다. 그러나 공사가 더 진척되어 슬로프와 리프트를 설치하기 위한 절성토 토목공사, 인공눈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한 댐·관로 설치를 하고 화학물질을 살포하기 시작하면 토양과 지하수, 주변 생태계는 완전히 교란될 것이다. 이러한 공사가 시작되지 않은 지금이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막을 수 있는 ‘골든타임’이다.

이러한 두 가지 문제를 모두 개선할 수 있는 방안으로 우리가 택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분산 개최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도 ‘아젠다 2020’을 통해 분산 개최의 효용성을 인정한 바 있다. 다만 조직위원회의 결정을 존중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로써 모든 책임은 온전히 조직위원회의 몫이 됐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강원도의 재정파탄과 환경파괴로 이어져 국제적인 수치로 남지 않게 하기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조직위원회의 결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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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www.redian.org/archive/73990


진보언론 <참세상>에 게재된 “큰빗이끼벌레 논란, 진보매체의 외모지상주의인가? -[기고] 4대강 공포마케팅의 희생양 큰빗이끼벌레(이하 ‘외모지상주의’ 글 링크)”라는 글을 보면서, 한편으로 반갑기도 하면서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반가운 마음이 들었던 것은 언론의 보도행태에 대한 지적에 공감하는 바가 상당히 있었기 때문이었다.

반가운 마음보다 더 컸던 답답함은, 세상을 바라보는 스케일과 관점의 측면에서 생물학 분야의 양 극단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생태학과 분자생물학 전공자들이 서로를 바라보면서 느끼는 답답함과 비슷한 감정이었을 것 같다.

큰빗이끼벌레는 4대강 논란의 핵심인 물흐름의 지표

큰빗이끼벌레의 외형에 초점을 맞춰 일어난 소동이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나 외모 지상주의의 폐해와 ‘일면’ 닮은 면이 있을 수 있다. 특히 언론이 이를 부각시켜 보도한 ‘선정성’은 언론의 부정적인 속성 중의 하나이고, 필자의 말처럼 진보언론이라면 기본적으로 지양해야 할 자세라는 데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큰빗이끼벌레에 대한 논란이 단순히 4대강 사업과 관련해서 외형에 초점을 맞춘 공포마케팅이라는 데에는 동의할 수 없다. 사람들이 큰빗이끼벌레를 보고 혐오감을 느끼는 것은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고, 익숙치 않다는 것은 이전에는 이만큼 흔히 볼 수 없었기 때문이며, 이는 4대강 생태계에 큰 변화가 나타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낯설고 거대한 생물을 보면서 갖는 혐오감은 논리와는 상관이 없을지라도, 직관적으로 그 예감이 들어맞는 경우도 많다.

열대의 동식물은 기후적 차이로 온대에 비해 보다 높은 생산성을 갖게 되고, 이로 인해 스케일이 다른 종이나 아종이 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황소개구리의 크기를 보고 혐오감과 공포감을 느끼는 것은 우리가 아는 개구리와는 차원이 다른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의식의 흐름의 밑바닥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역의 기후와 환경에 의한 경험이 밑바닥에 깔려있다. 이러한 감정이 현실적으로 힘 있고 덩치 큰 생물들이 우리 자생종의 생존을 위협하고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현상과 무관하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1).

큰빗이끼벌레는 외모만 흉측한 것이 아니라 4대강 사업이 가지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문제점 -흐름이 있는 유수(流水) 생태계(lotic habitat)였던 4대강이, 흐름이 거의 없는 정수(停水) 생태계(lenthic ecosystem)로 전환되고 있다는 증거를 잘 드러내 주는 지표로 볼 수 있다.

이는 이 생물이 수질의 직접적인 지표종이냐 아니냐, 독성이 있느냐 아니냐보다 더 중요한 문제이다. 4대강 사업의 논란의 핵심은 생명의 ‘강’이 죽음의 ‘호수’로 바뀐다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

강이 썩는다는 게 은유라고?

‘외모지상주의’ 글의 필자는 “생물학적으로 미생물이 대사를 하면서 산물을 내는 과정을 가리키는 단어가 두 개”라고 하며, ‘부패’와 ‘발효’를 들고 있는데, 이는 과학적으로 틀린 분류이다. 왜냐하면 보다 큰 분류중의 하나인 호기성 분해(산소를 이용한 분해)를 ‘부패’와 ‘발효’의 범주에 온전히 포함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과학적인 분류를 굳이 꺼내드는 이유는 이 부분이 4대강 사업 이후, 정수생태계로의 변화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강의 자정작용은 기본적으로 이 호기성 분해를 바탕으로 한다. 사업 전에 흐름이 상대적으로 크고 수심이 얕은 상태에서 하천 바닥까지 산소 공급이 충분하게 이루어지고, 하천 바닥도 모래, 자갈 등 알갱이가 굵은 입자로 이루어져 있을 때에는, 알갱이 사이사이의 공극으로 산소를 품고 있는 물의 소통이 원활했다. 그런 상태에서는 물이 맑았을 뿐만 아니라 그 알갱이들 사이에 어류가 산란을 하는 등 하천생태계의 다양한 생명활동들이 가능했다.

본 글의 필자가 수질을 이해할 때 부패냐 아니냐로 이야기하지 않고 지표로 이야기한다며 제시한 BOD(생물화학적 산소요구량(2))를 수질의 지표로 쓰는 배경에는 이러한 전제가 기본으로 깔려있다.

하천의 자정작용은 물속에서 살고 있는 생물을 바탕으로 한다. 이러한 미생물들과 여타의 생물들의 생명 작용은 물 안에서 이루어지는 끊임없는 호기성 분해 작용의 연속으로 표현할 수 있는데, 이 호기성 분해에는 말 자체에 포함된 것처럼 산소가 필요하기 때문에 산소요구량을 지표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흐름이 적어지면 미세한 입자들이 바닥에 쌓이면서 바닥이 무산소나 혐기성 상태가 된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과정은 이전의 호기성 분해 과정과는 완전히 다르며, 이러한 조건의 차이가 강과 호수 생태계의 차이를 야기하게 된다.

또한, 바닥에 쌓인 침전물들은 가만히 쌓여있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교란으로 인해서 물속의 산소를 한꺼번에 소모(3)해 버릴 위험성을 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강이 썩어간다는 표현은 단순한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그 안에서 일어나던 호기성 분해 과정이 혐기성 부패 과정으로 바뀌어 가는 시스템의 변화를 나타내는 실질적인 표현이다.

본 글의 필자는 물이 썩는다는 표현의 엄밀성을 요구하며, ‘물은 미생물이 아니므로 부패할 수 없다’며 얘기한다. 그런데, 그 ‘물’ 혹은 ‘강’이 일반적으로 강물 안에 포함되어있는 미생물, 유기물을 배제하고 순수한 H2O만을 표현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넌센스가 아닐까? 또한, 수질의 지표로 왜 BOD, COD(화학적 산소요구량) 등의 ‘산소’ 요구량이 사용되는지를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내뱉을 수 있었던 말이 아닐까?

재첩 등

사진설명 2013년 3월 26일 남한강 저니와 재첩 떼죽음 모습 (강바닥에 쌓인 뻘(좌상), 뻘과 함께 떠지는 재첩 껍데기(우상), 바닥에 드러난 재첩의 모습(하)) 사진제공: 4대강 조사위원회, 4대강범대위, 촬영자: 윤순태 감독

큰빗이끼벌레는 잘못된 자리잡음의 문제 -강이라는 시스템 자체가 변화하고 있다.

큰빗이끼벌레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황소개구리’의 문제와 다르지 않다. 그 자체가 외래종이라는 것을 차치하더라도, 외래종(exotic species) 문제의 핵심이 ‘잘못된 자리잡음’의 문제라는 면에서 말이다.

황소개구리도, 뉴트리아도, 붉은귀거북도, 달맞이꽃도 원래 있던 자리에서는 고유종, 자생종이었다. 즉, 그 생물들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생물이 자리잡은 맥락(context)이 중요한 것이고, 큰빗이끼벌레의 경우도 그 맥락으로서 강이라는 시스템을 봐야한다.

큰빗이끼벌레에 대한 과거의 기사들에서도 대부분이 저수지나 정체된 물에서 대량 발생하였다고 보고하고 있으며, 문제의 핵심은 유속의 변화에 있었다. 유속 이외에 큰빗이끼벌레와 수질과의 직접적인 관계는 생각보다 매우 복잡하다.

살아있을 때는 종속영양생물로서 유기물을 체내에 축적하지만, 죽고 나면 그 자체가 오염원이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강이라는 시스템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러한 관점에서 4대강의 수질 자료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는 하나하나 꼽아온 4대강 사업의 부작용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에 맞닥뜨리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완전히 새로운 시스템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일례로 4대강 전반에 걸쳐 총인 농도는 오히려 낮아졌다. 4대강 공사 준공시기와 비슷한 시기에 질소, 인을 처리할 수 있는 고도처리시설을 가동하여 오염원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그러나 4대강 사업에 의해 물이 정체되면서 오염물질들이 미세한 입자와 함께 바닥에 가라앉아 있다가, 언제든 엄청난 오염원으로 작용할 위험성을 안고 있다. 즉 외부의 오염원을 아무리 차단해도, 녹조의 재료가 될 수 있는 물질을 공급받을 수 있는 소스를 자체적으로 보유하게 된 셈이다.

이는 공상같은 가설이 아니라 실제 인농도가 줄어들었음에도 이례적인 녹조가 창궐했다는 사실이 강력한 논거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기존에 나타나던 물 속의 인농도, 녹조의 간접지표인 클로로필a 등의 수치와 실제 녹조 발생량(조류개체밀도, 특히 독성물질 배출 가능성이 높은 남조류의 밀도)의 상관관계 역시 바뀌고 있다.

즉, 시스템 자체가 완전히 변화하고 있으며, 변화하는 시스템에 대한 지식의 부재, 불확실성의 급증은 언제든 원수의 안정성(stability)과 먹는물의 안전성(safety)을 동시에 위협할 수 있다.

죄는 인간에게 물어야

‘외모지상주의’ 글의 필자는 나름의 내부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위해 진보매체에 쓴 소리를 한 것 같다. 그러한 문제의식을 환영하며, 공감하는 부분도 적지 않다. 그러나 진보 언론의 보도행태에 대한 반감으로 본인 역시 하천시스템에 발생한 큰 변화와 그 결과의 인과관계라는 보다 큰 그림을 놓치고 글을 쓴 것은 아닌지 다시 생각해보기를 권유하고 싶다.

또한, 한편으로는 환경문제, 특히 여전히 문제가 남아있으나, 이미 수년 동안 끌어온 문제이기 때문에 쟁점화가 쉽지 않은 4대강 사업 문제와 같은 경우, 그러한 선정성 없이 어떠한 방식으로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 고민이 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컴퓨터나 TV앞에 앉아 문제를 접한다. 문제는 책임을 져야 할 많은 사람들 역시 똑같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언론에 드러난 문제들은 대부분 4대강 현장을 다니는 민간 활동가들이 먼저 문제를 발견하고, 이슈화해서 정부를 움직이게 만들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그렇게 이끌어 낸 대응마저도 대부분 비논리적이고 책임회피성 발언에 불과했다(4).

이러한 구조를 바꾸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원 글의 필자와 내 생각이 그리 다르지 않을 것 같다.

환경 문제에 대한 인식은 수십년 전 단순히 자연의 문제로 인식되던 시기를 지나, 자연과 인간사회의 잘못된 관계와 인간사회 자체가 가지고 있는 모순들이 환경을 통해 드러나는 문제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어왔다.

사실 그 누구도 직접적으로 큰빗이끼벌레를 향해 ‘너 여기 왜 나타났느냐’거나 ‘너의 존재 자체가 죄’라고 얘기하지 않는다. 다만 큰이끼벌레라는 텍스트와 4대강이라는 컨텍스트의 잘못된 만남에 대해 원인을 제공한 인간들끼리 서로 논쟁을 벌이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다른 맥락에서 ‘외모지상주의’ 글의 필자가 인용한 굴드의 명제, “생명체는 그 자체로 죄가 될 수 없다”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잘못은 인간에게 있으므로.

<추가 설명>

1) 미학이 애초에 철학으로부터 나왔으며, 고대 철학에서 미추의 기준과 선악의 기준이 동일시되었던 것과도 연결되지 않을까?

2) ‘생물학적’ 산소요구량이란 표현은 과거에 쓰던 표현으로 엄밀히 따지자면 틀린 표현이다.

3) 이러한 침전물의 산소요구량을 SOD(침전물 산소 요구량: Sediment Oxygen Demand)이라고 하며, 호수에서 사용하는 오염 지표중 하나이다.

4) 이를테면, 2012년 가을, 금강에서 사상 초유의 규모의 물고기 집단폐사 사건이 발생했을 때, 환경부의 주요 기관 중 하나인 국립환경과학원장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요지의 말을 했다. “미스테리다. 원인을 알 수 없다. 그러나, 4대강 사업과는 무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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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www.redian.org/archive/61660


기이한 일이다.

4대강 사업이 완공된 지 일 년이 넘었는데, 한창 4대강 공사중일 때 보다, 4대강 곳곳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보다도 오히려 요즘 4대강 관련 보도를 훨씬 많이 접할 수 있다. 2013년 국정감사는 ‘4대강 국정감사’라고 해도 될 정도이다. 국토교통위원회, 환경노동위원회 뿐 아니라 13개 상임위 중에서 11개 국정감사에서 4대강 관련 질의가 나왔다니 말이다.

또한, 사건이 발생한 지 1년 만에 나온 ‘충남도 금강 물고기 집단폐사 민관합동 조사단’의 공동조사 보고서가 10월 21일 공개되었다. 결론은 물고기 집단폐사의 원인은 4대강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사고 직후 대한하천학회나 시민단체들이 제시한 ‘용존산소 부족으로 인한 폐사’라는 추정과 달라지거나 심도있는 내용도 거의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상황을 뒤늦게라도 잘못을 바로 잡으려고 하는 노력으로 보고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할까? 아니, 그보다 뒷북은 알아서 치게 놔두고 우리는 지금까지 짚어 온 문제들을 바로 잡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때인 것 같다.

책임자 처벌과 강의 복원

얼마전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이준익 감독이 출연하여 자신이 연출한 영화 “소원”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2008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조두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소원”은 사건의 처리 과정이나 가해자에 대한 처벌보다는 피해자가 삶을 회복해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 따뜻한 영화로 평가받고 있다.

감독은 “피해자에 대한 과중한 처벌을 주장하는 관성이 약간 비겁할 수 있다”며 “뉴스에 범인이 나타나면 ‘저 놈은 죽여야 해!’라며 본인의 도덕적 우월성”을 확보하면서 피해자의 삶 자체에는 별 관심이 없이 그치는 모습에 대해 지적하며 영화의 연출 의도를 밝혔다. 분노를 유발하고 그에 편승하는 것이 가장 쉬운 선택이라는 것이다.

인권을 유린하는 여러 사건들과 자연을 수탈하는 사업들은 여러 가지 공통점이 있지만, 특히 그러한 면에서 닮아있다. 가해자를 철저히 처벌하는 것은, 어리석은 반복을 피하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지만, 가해자의 형량을 늘린다고 피해자의 삶을 돌이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잘못된 정책과정과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파괴된 자연은 책임자 처벌만으로 복원되지 않는다. 이렇게 변해버린 자연을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는 당장 ‘범인’을 처벌하는 것보다 장기적으로 훨씬 더 중요한 일일 수 있다.

가해자에 대한 조치 -단순한 처벌이 아닌 단죄(斷罪)가 필요한 시점

책임자 처벌의 가장 근본적인 목적은 정쟁에서 칼로 쓰이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수와 실패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 같은 오류를 반복하지 않는 데에 있다. 흔히 사용하는 ‘단죄(斷罪)’라는 단어의 본래 뜻은 죄를 끊어낸다는 뜻이다.

그 동안 목적 대규모 토목사업이 끊임없이 이슈화 되면서도 같은 패턴의 싸움이 반복되어 온 것은, 책임자 처벌과는 별개로 적어도 진정한 의미의 단죄는 이루어지지 못했음을 의미한다.한 번 삽을 뜬 사업은 강행할 수 있으며, ‘먹튀’ 후에도 별 뒷탈 없이 더 큰 먹잇감을 찾아 나설 수 있는 사회. 그 사회가 만들어 낸 괴물이 바로 4대강 사업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지금 4대강 사업의 결과를 무기로 휘두르려는 많은 정치세력은 4대강 사업의 주체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민주-참여정부 10년동안 벌어졌던 개발사업을 일일이 열거하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은 지금 국토 환경의 수호자인 것처럼 나서고 있는 세력들이 ‘경제’를 살리겠다는 미명하에 경제성도 없는 사업을 강행했던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의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이 사업을 빌미삼아 한 세력이 다른 세력을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보다 근본적인 변화이다.

그 주체가 누구이든지 한 사람, 혹은 한 편의 이익을 위해 대규모 토목사업이 추진되는 것이 불가능한 사회로의 이행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사회로의 전환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영주댐 건설, 댐건설 중장기계획 등을 멈춤으로서 가능하다.

이미 4대강 사업의 허구성이 드러나고 책임자 처벌을 논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금 진행 중인 사업들을 멈추지 못할 이유가 없다. 공정율을 따지며 매몰비용을 논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오류를 되풀이 하는 것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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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성천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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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주댐 건선 예정지 하류 내성천 바닥의 자갈.
이전보다 많이 거칠어진 입자를 볼 수 있다.

피해자에 대한 조치 -복원, 재자연화, 자연성 회복… 문제는 내용

요즘 한국사회에서 4대강 이후에 달라진 강을 되살리기 위해 취해져야 할 조치를 의미하는 용어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단어는 ‘재자연화(renaturalization)’란 단어이다. 흔히 사용되는 ‘복원(restoration)’이란 용어가 아니라 재자연화라는 단어가 쓰이게 된 것은 복원이라는 단어가 원래의 의미와 다르게 남용되고 오염되었다는 인식이 확산된 데에서 기인한다.

실제로 복원이라는 단어는 가장 일반적이며 포괄적인 단어로, 기술적이고 단기적인 보수에서부터 유역의 기능적인 복원에까지 폭넓게 쓰이고 있지만, 그런 만큼 실질적으로는 개발사업이면서 사업의 본질을 흐리고 좋게 포장하기위해 이용되는 경우도 많았다. 4대강 ‘살리기’ 사업 역시 죽어가는 강을 복원하겠다는 목표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 외에도 하천의 서식처로서의 기능을 강조하는 회복(rehabilitation)이나 소생(reviving)이란 용어도 사용된다.

용어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 의미나 사회적 용례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 중요성이 구체적인 내용의 중요성을 앞설 수는 없다. 복원이라는 단어와의 차별성을 강조하며 4대강의 재자연화가 필요함을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고 있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과 방법에 대해서는 합의된 바가 없다.

물론 개략적으로 공감대를 이룬 부분도 있다. 4대강 사업으로 인한 변화가 예상보다 훨씬 빨리, 심각하게 일어났다는 현상 인식과 그러므로 강은 다시 흘러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를 위해 언젠가는 보를 철거해야 할 것이라는 정도이다. 문제는 그러한 내용을 어떤 사람들이 모여 논의할 것인지, 이미 일어난 변화에 대해 어떠한 방식으로 대응할 것인지, 그리고, 사회적 합의를 어떠한 방식으로 이뤄낼 것인지에 대해서는 모두 다른 상을 가지고 있으며, 거기에 각자의 정치사회적 이해가 결합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공간과 사람에 대한 애정, 그리고, 긴 호흡

대규모 개발사업은 그 자체로 인간성 상실의 단편을 보여줄 뿐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파괴라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 경제적인 이익을 미끼로 사람들을 이간질시켜 분열과 싸움을 조장하는 일은 개발사업을 추진하는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영양댐 건설로 수몰 위기에 처한 장파천 일대의 마을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영양군수의 비리와 영양댐에 대한 언론의 관심으로 댐건설 반대 운동이 힘을 받던 와중에 열린 제2회 장파천 문화제에서는 도중에 경운기로 축제중인 교차로 한 가운데를 지나가며, 불편함을 나타내는 주민이 있었고, 며칠 후, 누군가 축제 때 만든 솟대를 베어버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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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양댐 건설로 수몰위기에 처한 장파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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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 제2회 장파천 문화제에서 사람들의 염원을 담아 만든 솟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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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워진 솟대

경제적인 이익만이 위기를 낳는 것은 아니다. 며칠 전 도림천과 관련한 한 학술대회에서 나경채 관악구 의원은 “도림천에는 4년에 한 번씩 위기가 찾아온다고 알려져 있다.”는 발언을 했다. 청중들은 웃음과 함께 그 말이 담고 있는 의미에 대해 곱씹었을 것이다.

자연 환경을 대상으로 정책을 만들고 그 정책을 본인의 치적으로 삼는 것은 이제 매우 일반적이다.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로인해 장기적인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려 없이 정책이 세워지고, 그간의 추진 방향이 손바닥 뒤집듯 뒤집히거나 임기 내에 무언가를 완성하기 위해 무리하게 계획을 추진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 또한 장기적으로 꼭 필요한 일들이 계속해서 유보되는 등의 부작용이 발생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요즈음 밀양의 상황 때문에 다시 회자되고 있는 말이 ‘외부세력’이라는 말이다. 원칙적으로 지역 주민이외에는 모두가 외부세력으로 불릴 수 있다. 그러나 그 공간을, 그리고 그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과, 이들을 단순히 자신의 이익-그 이익이 경제적이든, 정치적이든, 혹은 둘 다 이든지-을 위한 수단으로 보는 사람들은 명확히 다르다. 후자야 말로 진정한 의미의 외부세력일 것이다.

진보정당이 다른 정치를 하겠다면, 여기서부터 다른 정치세력들과 달라야 한다. 개발과 지역의 현안을 정치적인 도약대로만 여기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과 사람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지역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오랜 시간 함께 고민하고 헤쳐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환경을 지키고 복원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자연 그 이상의 시스템과 인간 공동체 자체를 복원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환경운동의 오래된 구호, ‘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Think Globally, Act Locally!)’는 여전히 유효하다.

4대강 재자연화의 과정이 4대강 사업처럼 전국 규모에서 일괄적으로 적용된다면, 그것은 제2의 4대강 사업과 다를 바 없는 사업이 될 것이다. 그 과정은 지역의 문제를 면밀히 검토하고, 당사자들의 의견을 모으는 절차를 거쳐 이루어 져야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때로는 당사자로, 때로는 든든한 지원군으로 지속적으로 연대하며 해결책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새로운 질서

대부분의 환경문제는 상당부분 우리가 저지른 난개발의 결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은 하나도 놓치지 않으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달콤한 유혹에 쉽게 넘어간다. 그러나 많은 사례들이 삶의 방식의 변화와 양보 없이 기술발전만으로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4대강 사업은 경제적 목적을 가진 특정 세력의 강력한 의지와 권력에 의해 추진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자연의 힘에 대한 경시와 인간의 기술에 대한 오만함이 사회 전반적으로 깔려있기에 가능했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4대강 사업이후 홍수피해액이 8배나 증가했으며, 보호동물 28종이 낙동강을 떠났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주댐은 여전히 건설 중에 있고, 댐건설 중장기 계획에는 10년 내에 14개의 댐을 건설할 계획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4대강 사업으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천 차원에서 ‘고향의 강 정비사업’ 등 여러 사업들이 추진되고 있다. 근본적인 변화 없이는 우리는 무력감을 느끼며 같은 싸움을 계속 하게 될지도 모른다.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구호 중에 가장 직관적인 구호 중 하나가 ‘강은 흘러야 한다.’는 구호였다. 그러나 훨씬 더 긴 시간과 공간 차원에서 보자면 강들은 4대강 사업과 상관없이 언젠가 다시 흐를 것이다. 다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얼마나 강이 주는 혜택을 누리며 조화롭게 살 것인가는 우리 스스로의 몫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저지른 잘못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결국 그 결과는 우리에게 고스란히 돌아 올 것이다.

강과 사람 모두를 위한 새로운 질서가 절실히 필요한 것은 바로 우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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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www.redian.org/archive/60488


지금까지의 이야기들은 주로 수질과 수생태계 등 기존의 하천 환경문제들의 주류-그러나 사업의 방향은 지금까지의 정책과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에 해당하는 얘기였으며, 앞으로의 대재앙에 대한 예고에 가까웠다. 그러나 4대강 사업은 건설 과정 동안, 그리고 지금까지 많은 인간에게도 직간접적으로 많은 피해를 가져왔다.

홍수피해를 줄이겠다던 4대강 사업은 오히려 전국에서 다양한 형태의 재해를 유발하고 있으며, 이러한 재해들은 애초에 수리수문적으로 잘못 설계되었기 때문에 발생한 인재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또한 짧은 기간 동안 전 국토에 걸쳐 무리한 일정으로 사업을 강행하며 발생한 건설노동자들의 수십 건의 사망사고까지 줄줄이 이어졌다.

‘탕뛰기’, 그리고 이어지는 죽음

▲ 2010년 여름 낙동강 모습

▲ 2010년 여름 낙동강 모습

건설사의 다단계식 하청 및 속도전의 문제는 하루 이틀 사이의 일도 아니고 4대강 사업만의 문제도 아니다. 그러나 4대강 공사는 지금까지의 토목 사업들과 규모 면에서나, 속도 면에서나 차원이 달랐다.

대통령의 임기 내에 공사를 마치겠다는 명확한 목표 하에 24시간 밤샘작업, 장마기간 및 혹한기 중 공사 등 상식에서 벗어난 일정을 강행하였다. 이를 위해 ‘친수구역 활용에 관한 특별법’까지 제정하였다. 불법 계약으로 ‘탕뛰기’를 하는 덤프트럭 기사들은 자신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과속, 과적 운행을 할 수 밖에 없었고, 굴삭기 기사들은 불법 개조 및 여러 가지 불법 행위들을 강요받았다.

이 과정에서 크고 작은 사고들이 무수히 많이 발생하였으며, 공사기간동안 총 22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사망사고의 주된 원인은 협착, 교통사고, 지반침하 및 장비 전복 등으로 인한 익사, 추락 등이었다.

이에 건설노조는 4대강 속도전을 간접 살인으로 규정했으며, 실제 공사장에서는 위험천만한 순간들을 쉽게 목격할 수 있어 언제 사고가 나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사망사고의 원인을 노동자들의 과실 탓으로 돌렸다.

▲ 중심을 잃은 굴삭기

▲ 중심을 잃은 굴삭기

▲ 덤프트럭을 굴삭기가 끌어올리고 있다.

▲ 덤프트럭을 굴삭기가 끌어올리고 있다.

▲ 폭우에도 공사는 계속 되었다.

▲ 폭우에도 공사는 계속 되었다.

공사중 무너진 호국의 다리, 그러나 지금도…

4대강 공사 중 다리가 무너진 사례도 많았다. 그 중 2011년 6월 25일에 무너진 낙동강 본류 왜관철교(호국의 다리) 붕괴 사고는 자칫하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빈번하게 이용하는 다리였으나, 다행히 새벽에 사고가 일어났고 빠른 신고로 출입을 통제해 사상자는 나오지 않았다.

정부는 역시 비가 많이 와서 발생한 천재지변이라며 4대강 사업과의 연관성을 부정하기에 급급했지만, 당시 강수량이 아주 많지 않았음에도 6m 깊이로 준설을 한 지점이어서 물살이 예전보다 훨씬 빨라졌다는 것은 지역 주민들도 다 아는 사실이었다.

사업 후 준설에 따라 물살이 빨라질 것에 대비해 각 교량들에는 교각보호공을 설치를 했으며, 다리 규모에 따라 수십 내지 수백억씩의 예산이 소요되었다. 왜관철교 역시 교각 보호공을 설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고가 발생하여서 주민들의 불안감은 더욱 가중되었다.

▲ 2011년 6월 25일 새벽 무너진 왜관철교(호국의 다리)

▲ 2011년 6월 25일 새벽 무너진 왜관철교(호국의 다리)

더욱 많은 교량 붕괴가 일어난 곳은 공사장이 아니라 공사 구간으로 유입되는 지천의 합수부 인근에서 발생했다. 본류의 바닥을 6m로 깊게 파내면 본류와 지천 하상(river bed) 높이가 더욱 차이가 나게 되며, 이로 인해 유속이 빨라져 침식이 발생한다. 이러한 침식이 흐름 방향과는 반대 방향으로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에 ‘역행침식’이라고 불린다. 역행침식의 영향을 받는 지천 부분은 4대강 공사구간 밖이며, 따라서 교각보호 공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공사기간동안 여주 신진교, 용머리교 등 붕괴 되었거나 붕괴 위험이 발견된 교량이 다수 있었다.

▲ 준설공사 후 역행침식과 지천 교량의 붕괴

▲ 준설공사 후 역행침식과 지천 교량의 붕괴

▲ 2011년 7월 28일(좌)과 8월 17일(우)의 용머리교. 4대강 공사중 단기간에 붕괴가 급격히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2011년 7월 28일(좌)과 8월 17일(우)의 용머리교. 4대강 공사중 단기간에 붕괴가 급격히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신고 후 관련 없는 구제역 표지판으로 통행을 금지시켰다.

▲ 신고 후 관련 없는 구제역 표지판으로 통행을 금지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공사가 끝난 올해 장마철, 남한강 지천 용담천의 전북교가 붕괴되며 불안감을 가중시켰다. 이는 변화된 본류와 지천의 위상관계가 아직 안정화되지 않았으며, 본류의 큰 공사의 문제점 때문에 훨씬 많은 지천에도 공사가 이루어져야 함을 의미한다.

잠기는 농경지

▲ 공사기간 중 침수되었던 상주 참외(좌) 및 완공후 발생한 합천 수박(우)

▲ 공사기간 중 침수되었던 상주 참외(좌) 및 완공후 발생한 합천 수박(우)

공사기간동안 발생한 사고 중 성주에서는 특산물인 참외 하우스가 대량 침수되는 일이 있었다. 그 사례는 준설토 적재 및 공기 단축을 위해 제방을 잘못 트며 휩쓸려간 준설토가 배수펌프에 문제를 일으키며 발생한 사고였다. 그러면서 정부는 공사 기간 중 발생한 사고들은 천재지변이며 나머지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홍수를 예방하는 효과를 거뒀다고 홍보했다.

그러나 완공 후 보에 담수를 시작하고 침수가 되어 농사를 망치는 지역이 여러 지역 나타나고 있다. 보 상류에 담수가 되어 수위가 올라가는 지역 중 겨울 하우스 밭농사를 지어 특산물로 판매하고 있는 지역이 상당수 있으며, 이 중 관리수위 이하의 고도에서는 제방이 있다 하더라도 지하수위가 상승해 침수가 발생하여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지역 주민들은 사업 이전부터 침수를 예상하고 보상을 요구했으나 수자원공사와의 예상침수면적 예측이 크게 차이가 나 갈등을 빚어 왔다.

▲ 2011년 장마기간 잠긴 농경지를 바라보는 합천 주민

▲ 2011년 장마기간 잠긴 농경지를 바라보는 합천 주민

구조적 문제, 늘어나는 예산, 그래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

비리나 담합, 속도전을 위해 낭비된 예산을 차치하고라도 공사 중이나 이후의 피해를 메꾸기 위해 요구되는 예산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왜냐하면, 발생하는 문제들이 단순히 일회성의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인 구조의 문제이기 때문에 땜빵식 방안으로는 반복되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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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공사기간 중 병성천 제방의 반복되는 공사

비용은 줄이고 편익은 부풀려 겨우 경제성을 확보한 사업에 어마어마한 수질개선 비용, 하상 세굴 등의 보강공사비용, 지천 보강사업비용 등을 합치면 이만저만 마이너스 사업이 아니다. 정말 문제는 이 계산에는 노동자들의 죽음, 인간 이외의 수많은 생명들의 죽음, 습지 파괴 등은 포함되지도 않았으며, 그렇게 돈을 쏟아 부어도 해결 될 수 없는 문제가 더 많다는 것이다. 4대강 본류에서 실패한 정책을 은폐하기 위해, 지천까지 파괴하게 되면 그 영향은 우리가 영영 돌이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 이제, 우리는 뭘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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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www.redian.org/archive/59702


4대강 사업이 수질 측면에서 녹조현상이라는 형태로 인간에게 위해를 미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기만 했다면, 보다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수생태계와 하천변 생태계에는 이미 돌이키기 힘든 큰 변화를 낳고 있다.

그 변화의 범위와 정도는 생각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깊어 우리가 예상했던 것 보다 더 빨리, 심각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음에도 정부는 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이 아니라 4대강 사업과의 연관성을 부정하는 데에만 온 노력을 기울였다.

대표적으로 2012년 10월에 금강에서 발생한 엄청난 규모의 물고기 떼죽음 사태에 대해서도 국립환경과학원장은 ‘미스터리’라는 표현을 쓰며 4대강 사업과의 연관성을 부정했다 (2012년 10월 31일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인터뷰중).

급이 다른 집단폐사와 금강 씨메기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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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10월 26일 금강변에서 발견된 136 cm가 넘는 메기 사체 <사진: 오마이뉴스 김종술 기자>

인터뷰에서 언급되었던 금강 물고기 떼죽음 사태는 강우 후에 혹은 지엽적으로 나타나는 물고기 집단 폐사사건과는 소위 ‘급’이 다른 사건이었다.

10월 18일부터 떠오르기 시작한 물고기 사체는 매일 밤마다 새롭게 수만 마리의 사체를 더하며 13일 동안 이어졌으며, 물고기 사체가 발견된 구간도 30km에 이르렀다.

이 집단 폐사사건의 정점을 찍은 것은 떼죽음이 발견되기 시작한 7일째, 사람 키만 한 메기 사체가 발견된 때였다. 메기 사체를 발견한 기자와 환경단체 활동가에 따르면 사람의 주검으로 보여 주춤했다고 하며, “이런 크기라면 씨메기로 보인다”며 “금강 물고기 씨가 마르는 것이 아니냐”며 걱정했다고 한다.

▲ 밤새 떠올라 금강을 따라 끝도 없이 이어진 물고기 사체, 2012년 10월 27일 새벽 5시반경,

▲ 밤새 떠올라 금강을 따라 끝도 없이 이어진 물고기 사체, 2012년 10월 27일 새벽 5시반경, <사진: 오마이뉴스 김종술 기자>

정부가 4대강 사업과의 연관성만을 부인하며 사체 수거에만 급급하던 10월 24일, 구미 낙동강 변에서는 또 다른 집단 폐사 사건이 발생하였다. 주변 주민들은 몇 십 년을 살았지만 그 주변에서 이렇게 큰 물고기들이 죽어서 떠오른 적은 처음이라고 입을 모았다.

거의 동시에, 멀리 떨어진 금강과 낙동강에서 유례없는 집단 폐사 사건이 발생한 것은 단순히 우연일까?

▲ 2012년 10월 26일 구미 낙동강변

▲ 2012년 10월 26일 구미 낙동강변 <사진: 서풍 박용훈>

▲ 4대강 물고기 집단폐사 개요 (한겨레 2012년 11월 9일자 인용)

▲ 4대강 물고기 집단폐사 개요 (한겨레 2012년 11월 9일자 인용)

사건을 미스터리로 남겨두고 싶은 것은 아닐까?

환경부는 집단 폐사의 원인은 알 수 없다고 하면서도 4대강 사업과 집단폐사는 관계가 없다고 앞뒤가 맞지 않는 발표를 했다.

한편 당시 많은 전문가들은 하천의 호소화에 따른 산소결핍을 그 원인으로 추정했는데, 추정의 근거로는 독극물에 의한 집단 폐사의 경우 성체보다는 치어의 피해가 큰 반면 산소결핍의 경우는 성체들의 피해가 더 큰 경우가 일반적인데, 이 폐사 사건의의 경우 금강과 낙동강 모두 성체들의 피해가 대부분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또한 보 건설에 따른 하천의 호소화는 4대강 사업 계획단계에서부터 우려가 되었던 부분이었다. 보 건설에 따른 하천의 호소화에 따라 산소가 부족해지는 메커니즘은 몇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먼저 하천의 흐름이 줄어듦에 따라 그 자체로 용존산소가 줄어들 수 있다.

두 번째로 하천의 흐름이 줄어들면서 특히 보의 직상류에는 표층수는 월류해서 흘러가지만, 보에 의해 가로막힌 아래쪽은 흐름이 거의 없기 때문에 작은 알갱이들의 퇴적이 일어나고, 저질토층이 형성되면서 혐기성 상태가 된다. 특히 여름, 겨울 등 일교차가 크지 않은 시기에 성층현상이 일어날 경우 저서에는 안정적인 혐기성 상태를 유지했을 수 있다.

세 번째는 봄가을 일교차가 큰 경우 전도현상이 일어나 수직혼합이 발생하면 바닥에 쌓여있던 퇴적물 등이 상부와 혼합이 되며 짧은 시간 동안 대량의 산소 소모를 일으켜 바닥층 뿐만 아니라 수체 전반에 걸친 산소 결핍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백제보의 경우 2012년 여름 녹조현상에 대한 우려로 인해 조류제거제를 대량으로 살포한 정황이 포착되었다.

이러한 조류제거제는 응집제의 역할을 하여 조류와 함께 침강하는 효과를 나타내 표층수의 조류는 제거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유기물이 수체에서 완전히 제거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하천 바닥에 침전되어 전도현상이 발생될 경우 더욱 심각한 오염을 일으킬 수 있다.

즉, 녹조현상이라는 4대강 사업의 부작용을 저감하기 위해 사용한 해결책이 또 다른 대재앙을 불러 일으켰을 수 있다.

▲ 백제보 창고의 조류제거제 (2012년 6월 14일)

▲ 백제보 창고의 조류제거제 (2012년 6월 14일)

▲ 부여 관측소 일교차 및 일최저기온(2012년 7월 1일~11월 5일)

▲ 부여 관측소 일교차 및 일최저기온(2012년 7월 1일~11월 5일)

또한, 물고기 떼죽음이 일어난 시기가 정확하게 기온이 갑자기 낮아지고 일교차가 커진 시기와 일치한다. 위의 그림은 금강 떼죽음 사건이 일어난 백제보와 가까운 부여 관측소의 일교차(일최고기온-일최저기온)와 일최저기온이다.

사건이 발생하기 5일전부터 전날까지 일교차가 15℃가 넘는 날들이 연속되었으며, 최저기온이 4 ℃이하로 떨어져 표층수의 밀도가 높아져 전도현상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 낙동강 구미 기상대의 관측자료 역시 유사한 양상을 보였다.

이러한 조건들은 기온이 급강하하는 밤동안 표층수를 냉각시켜 밀도가 커긴 표층수가 하부로 내려가면서 지난 여름 담수기간 동안 보 상류부에 퇴적된 바닥층의 오염물질들을 수체로 확산시키는 작용을 일으켜 짧은 시간동안 용존산소의 대량소비 및 고갈을 일으켰을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사후 추정으로 정확한 원인을 파악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미스터리’이지만 4대강 사업과는 관계가 없다는 입장보다는 훨씬 논리적이지 않은가? 또한, 그러한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를 조사하고 대비하는 것이 당연한 과정이었어야 한다.

바닥부터

4대강 사업에 의한 생태계 변화가 강바닥에서부터 나타날 것이며, 녹조제거를 위한 조류제거제의 투입은 이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는 많은 전문가들의 예측과 추정은 작년 가을 물고기 집단폐사 사건에 이어 올 봄 4대강의 곳곳에서 크고 작은 다양한 사건들로 재현되었다.

수중생태계의 대참사라고 부를 수 있을 사건이 발생했던 금강에서는 2월 말, 더 상류인 공주보 직상류 지점에서 물고기와 함께 고라니, 자라 사체까지 발견되었다.

이때의 현장조사에서는 공주보 상류의 만곡부 안쪽 바닥에 뻘이 쌓여 부패되고 있는 모습이 나타났다. 이러한 현상은 유량이 적을 때는 물이 흐르지 않고 드러나 있어야 하는 곳에 보때문에 물이 차면서 점토질의 입자가 퇴적이 되며 나타날 수 있는 모습이다.

▲ 2013년 3월 26일 남한강 재첩 떼죽음 모습 (강바닥에 쌓인 뻘(좌상), 뻘과 함께 떠지는 재첩 껍데기(우상), 바닥에 드러난 재첩의 모습(하))

▲ 2013년 3월 26일 남한강 재첩 떼죽음 모습 (강바닥에 쌓인 뻘(좌상), 뻘과 함께 떠지는 재첩 껍데기(우상), 바닥에 드러난 재첩의 모습(하)) <사진제공: 4대강 조사위원회, 4대강범대위, 촬영자: 윤순태 감독>

또한 남한강에서는 모래 바닥에서 살 수 있는 재첩 위에 뻘이 쌓이며 집단 폐사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당시 동행했던 지역 어부는 예전에는 배가 고장나도 시동이 꺼진 채로 한두 시간이면 출발지까지 배가 흘러갔지만, 지금은 배가 고장나면 하루가 걸려도 출발지점까지 갈 수 없다며, 바뀐 흐름에 대해 전했다.

흐름이 없어진 강은 오랜 시간동안 물을 잡고 있으며 녹조가 자랄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는 한 편, 작은 알갱이가 바닥에 쌓이게 함으로써 저서 생태계 또한 바꿔 놓는다.

게다가 녹조를 없애겠다고 살포하는 조류제거제는 바닥에 더욱 많은 유기물질을 쌓이게 함으로써 악순환을 더욱 가속시킬 수 있다. 흐름이 줄어 더욱 잔잔해진 저 강 아래에서 과연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우리는 바닥부터, 더욱 기초부터 살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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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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