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1182004155&code=990402

부산 기장군 해수담수화 수돗물 공급 갈등 문제가 새해에도 이어지고 있다. 일반 가정에 공급되는 수돗물의 원수인 바닷물에 고리 핵발전소에서 배출되는 ‘방사능’ 물질인 삼중수소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삼중수소는 물에 섞인 오염물질이 아니라 일반 수소를 대신해 물분자 자체를 변형시키기 때문에 해수담수화 시설을 포함한 어떤 정수처리 공정으로도 제거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러한 ‘물 안전성’의 문제가 기장군만의 문제인 걸까?

그 답을 찾기 위해 “먹는 물에 대한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가?” “그런 시설이 왜, 거기에 자리 잡았는가”를 보자. 상하수도 시설을 포함해 물과 관련된 책임은 정부에 있다. 물은 공공재이기 때문에 정부가 독점 관리해 왔다. 그 결과 우리는 물을 경제성과 품질을 고려해 선택할 수 없다. 그냥 정부가 공급해 주는 대로 쓸 수밖에 없다. 그런 물을 민영화하려는 계획이 물밑에서진행되고 있다. 2010년 녹색성장위원회·환경부·국토해양부는 함께 ‘물산업 육성 전략’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 보고서에 기장군 해수담수화 시설의 주역인 ㄷ기업의 이름이 해수담수화와 함께 언급돼 있다. 또한 총 1954억원의 사업비 중에 국비, 시비와 함께 706억원의 민자를 유치해 해수담수화 시설을 설치하고 수돗물을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실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미 수십개의 지자체가 민간위탁이라는 이름으로 민영화 단계를 밟고 있고, 중앙정부는 지자체에 이를 강요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해수담수 공급의 강행은 물 민영화 실현 계획의 일부로 봐야 한다.

상수도와 같이 선택의 여지가 없는 ‘독점적’인 사업이 ‘민영화’가 되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첫째, 물값이 오를 수밖에 없다. 둘째, 운영 노하우나 기술이 사기업의 영역으로 이전되고 자체적으로 발전되어 공공의 영역으로 되돌릴 수 없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기장군의 사례에서 보듯이 먹는 물의 안전성과 안정성을 장담할 수 없다는 데 있다. 1991년 두산전자의 낙동강 페놀 방류 사건은 ‘불운한 사고’가 아니라 기업의 비용 절감을 위해 먹는 물 안전성을 외면하고 고의적으로 페놀을 방류한 범죄였다.

물 민영화라는 간판을 내걸고 진행되는 사업은 없다. 하지만 실질적인 물 민영화가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 기장군의 해수담수화 상수 공급 논란은 그 과정에서 핵발전소 문제와 결합해 큰 저항에 부딪혔지만, 결코 기장군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안전하지 않은 물을 집 수도꼭지를 통해 반강제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구조에 살고 있으며, 기장군민들은 그 구조와 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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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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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www.redian.org/archive/94921

도시와 문명, 그리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이지만 사람들의 눈에는 드러나지 않는 노동에 대해 이현정씨의 연재 글을 3차례 정도 게재할 예정이다. 이번 글은 두번째 글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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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사회의 그늘, 산재 사망률 1위 진폐증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나 각자의 직업은 결국 우리가 삶을 영위해 나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생산하고 소비하고 뒤처리를 하는 과정의 어느 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이전 글인 ‘인간생태계에도 분해자가 있다’에서는 그 중 청소 노동자나 정화조 노동자 등 ‘분해자’의 역할을 하는 노동은 특히 문명사회가 유지되기 위해 필수적임에도 불편해서 숨기거나 점잔빼며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희생에 대해서도 잘 알려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가 앞에서 전제한 ‘분해자’의 역할을 하는 노동에만 해당될까?

물론 그렇지 않다. 대표적인 예로 대한민국에서 공식적인 산업재해 사망율이 가장 높은 분야는 1차 산업인 광업이다.(1)2014년 말 기준 광업의 사망만인율(노동자 만 명 중 산재 사망자 수)은 전체 평균 1.08명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높은 342.3명이다.(관련 통계 링크)

광업 노동자수 자체가 많지 않기 때문에 사망자 수로 따지면 제조업이나 건설업에 비해 높지 않은 것처럼 비춰지지만 사망비율로 따지면 다른 업종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높으며, 그 중 대부분은 질병재해, 즉 진폐증의 비율이 압도적이다. 광업 중에서도 사망만인율이 가장 높은 세부 업종은 석탄광업으로 1,077명/만명에 달하며, 금속 및 비금속 광업이 492명/만명으로 그 뒤를 따르고 있다.(2)


진폐증, 미세먼지, 기후변화의 관계는?

진폐증이 단순히 광업에 종사하고 있는 일부 노동자들의 이야기 같겠지만, 이 문제는 사실 요즘 계절과 관계없이 우리를 괴롭히는 황사(혹은 미세먼지) 문제나 전 지구적인 문제인 기후변화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대부분의 환경문제는 어떤 물질이 첫째 ‘적절하지 않은 장소’에, 둘째 ‘잘못된 형태’로, 셋째 ‘너무 많거나 적은 양’이 존재하는 (혹은 너무 빠르거나 느린 속도로 늘거나 줄어드는) 문제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진폐증-미세먼지-기후변화는 모두 지하에 수억 년 동안 축적되어 온 화석연료를 불과 몇 백 년 만에 대부분을 꺼내어(3) 이를 ‘소비’하는 다양한 과정을 통해 대기 중으로 확산시키고 있는 일련의 과정에서 발생한 부작용 혹은 후유증으로 해석할 수 있다.

석탄 등 화석 연료의 생산 과정에서 1차적으로 광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에게 밀폐된 공간에서 가장 강한 형태로 영향을 끼친 결과가 진폐증이라면, 미세먼지(4)는 그렇게 생산된 화석연료의 소비과정이면서 동시에 에너지의 생산 과정에서 그 부산물이 주변 지역으로 확산되어 나타난 부작용이며, 그 결과 수억 년 동안 지구의 지하에 축적되어 있던 탄소가 너무 빠르게 기체의 형태로 전환되면서 지구 대기의 조성을 바꿔 나타나는 원치 않는 후유증이 기후변화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연결고리는 지구의 순환시스템 속에서 화석연료뿐 아니라 모든 영역의 생산-소비, 그리고 이후의 폐기과정을 통해 나타나며, 우리의 삶은 그 고리를 벗어나 존재할 수 없다. 노동자에게 해로운 물질은 인간 이외의 수많은 생물들과 생태계 시스템에도 위해를 끼치는 경우가 많으며, 이러한 것들은 하나하나의 개별 사안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전체를 보아야 올바른 파악이 가능하다.


퀴리부인도 산업재해로 사망했다.

퀴리

1934년 7월 5일자 퀴리부인의 사망 기사 -The Burlingtom Free Press, Albany, New York. (출처: http://www.rarenewspapers.com/view/54824)

지난 10월 미래창조과학부 국정감사에서는 “연구는 노동이 아니”라며 임금피크제의 정부출연 연구소 적용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피력한 한 국회의원이 있었다.(5)

그는 국내에서 여성 최초로 한국원자력연구원 연구원장을 지낸 전력을 가진 민병주 의원이다. 연구는 노동이 아니라던 그가 퀴리부인도 산재로 사망했다는 이 소제목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할지 모르겠다.(6)

하지만 우리가 잘 아는 세계 최초의 여성 노벨상 수상자이자 민병주 의원의 학계 대선배로 볼 수 있는 마리 퀴리는 방사능 피폭으로 인한 재생불량성 빈혈, 골수암, 백혈병으로 사망한 것이 명확한 사실이며, 이 질병들은 삼성반도체 노동자들의 대표적인 산재 질병이기도 하다.

물론 차이는 있다. 퀴리부인은 위험성을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음에도 연구를 이어나갔고 그 결정에 따른 책임 역시 감내한 것이지만, 삼성반도체 노동자들의 경우 그러한 위험성에 대한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의 결정에 따른 결과가 아니었다. 그 책임은 당연히 1차적으로는 직접 업무를 설계하고 인력을 투입한 회사에게, 2차적으로는 그러한 산업에 대한 안전망을 만들지 못한 사회에 있으며, 우리는 함께 그 책임을 져야한다.

방사능과 핵발전소의 문제 역시 앞에서 살펴본 전 지구적 시스템의 입장에서 바라봐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핵발전소 내부의 시스템을 안전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핵발전소가 주변 거주지 및 생태계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이 인식은 많이 바뀌기 시작했고, 유출된 방사능이 해양 생태계를 통해 우리나라의 먹거리에, 특히 학교 급식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하려는 노력들로 이어지고 있다. 조금 더 바라자면, 이러한 인식이 광우병 사태와 마찬가지로 단순히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요구를 넘어 지구 시스템에 대한 이해와 ‘안전’ 못지않게 중요한 시스템의 안정성(stability)에 대한 인식 전환으로까지 이어져야 한다.


시스템의 한계와 자기 노동 사이의 괴리

지구의 생태계 자체를 원금이라고 생각했을 때, 이론적으로,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생산되는 이자 부분만이다. 또한, 우리가 버리는 폐기물 역시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처리될 수 있는 만큼만 내놓은 것이 정당하다.

물론 이러한 사고는 지구라는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복잡성과 불확실성을 고려했을 때 어디까지나 이상적이고 이론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그러나 수억 년 동안 축적되어온 화석연료는 거의 고갈시키고, 우리 대에서 책임질 수도 없는 핵폐기물만 남기려는 지금 우리의 모습은 선대에서 물려받은 가산을 다 탕진하고, 자식들에게 어마어마한 빛만 물려주는 탕아와 다름 없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이 글에서는 공교롭게도 에너지와 관련된 산업에 대해 주로 썼지만, 이러한 문제는 다른 모든 산업 분야에서 비슷한 형태로 나타난다. 이를테면 먹거리를 생산하는 축산업, 농업, 수산업에서 조차 농약, 화학비료, 유전자조작식품, 항생제 등을 생산하고 사용하는 과정에서 누군가의 몸에서 농축되거나 자연 환경으로 흘러들어 가 시스템의 안정성을 파괴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문제들이 우리의 삶에 직/간접적으로 지배하고 있음이 분명함에도 우리 각자는 그 과정들을 제어하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우리는 무엇을 생산할지 결정하고, 그 결과가 미치는 영향에 대해 고민하기는커녕 직접 다루는 물질에 대한 정보도 부족한 구조 안에 살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많은 노동자들이 누구보다 먼저 일차적인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이러한 왜곡은 어디서 기인하는 걸까?


3편: 무엇이 은폐를 구조화 하는가 -거대한 전환이 필요하다.


<참고>

1. 고용노동부, 2014, 2014.12월말 산업재해 발생현황.

2. 물론 이렇게 압도적인 사망만인율 통계는 1980년대부터 이어진 진폐증 재해자들의 싸움과 그 결과 제정된 「진폐의 예방과 진폐근로자의 보호 등에 관한 법률」 등의 역할이 크다.

3. 우리는 이 과정을 석탄 석유의 ‘생산’이라고 부르지만 실질적으로는 이 역시 긴 세월동안 지구의 다양한 지질학적 과정을 통해 형성된 산물을 소비하는 과정에 가깝다.

4. 그린피스에 따르면 초미세먼지 배출원 중 석탄이 차지하는 비중은 59%(2011년 기준)라고 하며, 한국은 총 전력생산량의 39%(2014년 기준)를 석탄화력발전에 의존하고 있다.

5. 관련기사: [국감현장]과학자 출신 국회의원의 ‘눈물’…”연구는 노동 아냐”-민병주 의원, “노벨상때문에 안타깝고 속상하다” 눈시울 붉혀..”임금피크제 출연연 적용 안돼” (관련 기사 링크)

6. ‘연구는 노동이 아니’라는 발언과 함께 연구를 신성시하며 흘린 눈물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그와 같은 위치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노동’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얼마나 왜곡되어 있고 저급한 것인지 많은 이들이 확인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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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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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www.redian.org/archive/94627


도시와 문명, 그리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이지만 사람들의 눈에는 드러나지 않는 노동에 대해 이현정씨의 연재 글을 3차례 정도 게재할 예정이다. 많은 관심을 부탁한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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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들이 버섯을 먹어도 되나요?

이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익숙해진 단어인 생태계(ecosystem)에 대해 배울 때 가장 처음 배우는 내용이 생산자-소비자-분해자의 관계다.

지구의 흙, 물, 공기 등의 무기물을 생명활동에 필요한 유기물로 바꾸는-우리가 광합성이라고 부르는-과정을 담당하는 생산자와 이 유기물을 소비하는 소비자만 있다면 무기물은 금방 고갈되고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내에 사라질 것이다. 이 과정을 순환 고리로 연결시키는 것은, 바로 유기물을 다시 무기물로 분해하는 분해자이다.

채식주의자 친구들과 버섯매운탕을 먹으러 가서 “어, 버섯은 식물 아닌데~”라는 재미없는 농담을 하고 비난을 받곤 했는데, 온라인상에 “채식주의자들이 버섯을 먹어도 되나요?”라는 글이 올라 와 있는 것을 보면 그런 생각을 한 게 나만은 아니었나 보다.(1)

버섯은 식물이 아닌 대표적인 분해자이며 균계로 분류된다. 버섯, 세균 등의 분해자들은 생산자와 소비자인 식물과 동물이 죽어서 남긴 잔해를 분해하고 자연으로 돌려줌으로서 새로운 생명이 자라날 수 있는 바탕을 만들어 주고, 그래서 ‘자연의 청소부’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 음지에서 일어나는 이런 분해자의 역할을 전혀 알아채지 못하거나, 쉽게 잊어버리고 만다.

사실 인간생태계에서도 분해자 역할을 하는 노동은 여러 가지 의미로 ‘음지’에서 수행되고 있다.

누군가는 매일 저기 들어가요.

얼마 전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부제를 가진 대학 교양수업에서 도시하천 답사 특강 안내를 했다. 말이 도시하천 답사 수업이지, 있었던 지도 모르는 캠퍼스 구석의 외진 댐 앞에서 집합을 하고, 철망의 개구멍을 지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복개된 하천을 통과하고, 학교를 한참 벗어나서야 끝나는 수업인지라 수강생들의 얼굴에서 불만의 기색이 역력했다.

몇 년 째 같은 코스로 답사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학생들의 얼굴이 가장 찌푸려지는 지점은 항상 같은 지점, 같은 순간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그 곳, 복개되어 하수도로 쓰이고 있는 작은 물길이 본류와 만나는 지점의 철문을 들어 올리는 순간, 학생들의 얼굴은 일제히 일그러졌다.

현정1

한 학생이 도르레를 돌려 우수토실의 문을 열고 있다.

그 곳은 도시가 생기기 전에는 작은 물길이 본류와 만나는 지점이었지만, 지금은 우수토실(雨水吐室, overflow chamber)이라는 구조물이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지천을 복개해 하수도로 사용하면서 하수와 계곡수가 함께 섞여 흐르는데, 비가 오지 않을 때에는 이 물을 하수처리장으로 연결된 관으로 보내고, 비가 오면 빗물과 하수가 섞인 물이 하천 본류로 넘쳐 흐르도록 구조물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여기에 몇 년 전 생태하천 복원 사업을 하면서 무거운 철문을 만들어 덮어 놓았는데, 도르레를 돌려 그 철문을 열자, 학생들은 일제히 얼굴을 찌푸리며 한 발짝씩 뒤로 물러섰다. 하수 냄새가 진동을 했기 때문이다.

학생들을 안심시키려, 그 하수는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본인들이 곧 점심을 먹을 캠퍼스 내 식당에서 설거지한 물, 화장실의 세면대 물 등이 모여서 흘러오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점심시간이나 저녁 식사시간에는 유량이 늘어난다는 설명을 했다.

빨리 문을 닫았으면 하는 바람의 눈초리가 느껴졌지만, 계속 이어서, 문을 열자 드러난 빗자루가 왜 거기에 있는지를 설명했다. 여러분들이 잠시도 맡고 싶어하지 않는 이 냄새가 누군가에겐 너무나 익숙한 냄새인데, 왜냐하면 그 누군가가 비가 오기 전 항상 이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면, 하수가 들어가는 유입구를 저 빗자루로 치워주지 않는다면, 역류가 일어나 여러분이 공부하는 캠퍼스가 하수에 잠길수도 있는 시스템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현정2

현정3

하수가 들어가는 유입구 역시 누군가 직접 치워줘야한다

그냥 조금 더러운 일이 아닌 생존의 문제

누군가에게그런 ‘더러운’ 장소가 일터가 되는 것은 지금의 구조에서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다. 그렇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그러한 일이 그냥 조금 더러운 일을 수행하는 데에서 끝나지 않고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생명에 위협을 가하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있는데, 이러한 사실이 잘 알려지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오래 전, 지금은 캐나다로 이민을 가버린 남자 간호사 친구가 심각한 표정으로 얘기를 꺼냈다. “음식물 쓰레기 봉투 안에 다른 봉투를 넣으면 절대 안되겠더라.”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얘기였지만, 그다지 심각하게 듣지 않고 있다가 이어진 친구의 얘기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는 대형병원 응급실 간호사였다. 어느 밤, 엠뷸런스에 실려온 환자의 온 몸에서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의 악취가 났고 입,코,귀는 모두 음식물 쓰레기가 차 있었다. 급하게 옮겨 기도를 확보하고 처치를 했지만, 결국은 뇌사상태에 빠졌다고 한다.

그 환자는 음식물쓰레기 재활용업체의 노동자였다. 여느 날과 같이 음식물 쓰레기를 혼합하는 기계에 수거해 온 쓰레기를 넣었는데 기계의 작동이 멈췄다 한다. 이유는 봉투 안에 또 다른 봉투가 있었고, 그 봉투가 음식물 쓰레기를 잘 섞기 위해 돌아가야 하는 교반날개의 회전축에 끼어서였다. 기계가 다시 돌아가게 만드는 가장 빠른 방법은 직접 그 음식물쓰레기 안으로 헤엄쳐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들어간 직후 음식물 쓰레기가 뿜어내는 가스에 정신을 잃고 그 안으로 빠져버렸다. 그는 결국 음식물 쓰레기에 익사한 것이다.

많은 산재들이 그러하듯, 이러한 비극적인 사고를 개인의 부주의로 돌리고 은폐하는 방식으로 처리되는 일은 흔하디 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1년부터 2011년까지 10년 동안 공식적으로 정화조와 하수도 맨홀에서 작업 도중 질식사로 ‘사망’에 이른 노동자만 83명에 이른다(추락사 제외)(2).

문명은 공짜가 아니다.

거의 20년 전, ‘환경공학과’에 입학했을 때, 나는 내 예상과는 다른 커리큘럼에 무척이나 실망했다. 나는 좀 더 그럴듯하고 거대한 무언가, 자연 환경을 지킬 수 있는 멋들어진 방안을 배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환경공학과의 커리큘럼은 도시의 ‘배설물’들을 어떻게 처리/처분 할 것인가와 관련된 과목들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처리방안들은 완벽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 후, 전공 수업에 들어가 하수처리장, 폐수처리장, 위생매립지, 소각장 등등을 견학하면서 그 규모와 모습을 보며 그 심증은 더욱 굳어져 갔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한 교수님이 냄새가 난다고 얼굴을 찌푸리던 동기생을 혼내시며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고, 절대 그런 태도를 취하면 안 된다고 얘기하시던 순간이다. 나는 그 교수님이 왜 그렇게 얘기하셨는지 이해하고, 심지어 그 분의 직업정신을 존경하기도 하지만, 그 결론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는 오히려 더 드러내야 한다. 잠시 노출되는 것만으로 얼굴 찌푸리는 그런 곳이 누군가의 일터이고, 아무 일 없는 듯 화려한 이 도시들의 구석에서, 지하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 시간에 위태위태하게 이어지고 있는 그런 노동 덕분에 이 도시가 그나마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아야 한다. 또한 어찌되었든 잘 돌아가고 있는 듯 보이는 문명사회의 이면에는 얼마나 많은 문제가 도사리고 있는지, 그로인해 얼마나 많은 취약 계층의 사람들과 인간 이외의 생태계 구성원들이 생존 자체를 위협받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올바른 대안과 진정한 전환은 정확한 현실인식을 바탕으로만 시작될 수 있을 테니.

* 2편에 계속: 생산과 소비의 왜곡: 노동자에게 해로운 물질은 생태계에도 해롭다.

<참조>

(1) “Can Vegetarians Eat Mushrooms?”에서는 균류인 버섯이 생물의 분류법으로 봐서는 식물계보다는 동물계에 가까운 특성을 가지고 있고, 음식으로서 채식주의자들에게 더 적합한 이유는 찾을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북미 채식협회 등에서는 채식주의자들을 육고기, 조류, 조개, 생선 및 그 부산물을 먹지 않는 사람으로 정의함으로서 버섯이 채식에 적합하지 않는 식재료로 분류하고 있지 않다고 결론 내리고 있다.(관련 글 링크)

(2) 관련기사: 한겨레, 지하에서 ‘살인’ 똥냄새에 쓰러지는 사람들(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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